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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응답과 축복의 하나님 (1) 응답을 막고 있는 근본 원인 [민 6:22-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12.04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온전히 받기 위해 응답을 막고 있는 근본 원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민수기 6장 22~2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한 가지를 명하십니다.
“…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온갖 위험과 재앙으로부터 지켜주기를 원하십니다. 자녀들에게 복 주시고 은혜 베푸시며 평강 주기를 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요.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건강, 물질, 가정, 일터 등 모든 분야에 축복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혹여 아직 응답을 못 받으셨거나 일부만 응답받으신 분이 계십니까? 이는 응답을 가로막고 있는 ‘근본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근본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서, 또는 준비가 부족해서 해결하지 못한 것이지요.
하지만 설령 응답을 못 받으셨다고 해도 실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열심히 심고 구한 대로 응답 주시려고 축복을 쌓아둔 채 기다리시고, 복 받을 그릇을 준비하기만을 여러분 자신보다 더 고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응답을 막고 있는 근본 원인만 해결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확실히 깨닫고 해결하심으로 복합적인 축복의 주인공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근본의 문제 해결하면 복합적인 응답 임해

‘근본의 문제’란 무엇일까요?
질병, 물질, 가정 문제 등 인생 문제에는 저마다 영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또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지 못하거나 축복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다 원인이 있지요.
원인 중에서도 직접적인 원인, 근본 뿌리가 되는 원인이 바로 ‘근본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근본의 문제, 곧 근본 원인을 해결하면 갖가지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고 복합적인 응답이 임합니다.

이 근본 원인을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구원의 은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에 갖가지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을 지킵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범사가 형통하지요.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죄를 범하고 불순종하지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4절 전반 절에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하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 축복받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죄의 보응으로 갖가지 재앙이 옵니다. 이 죄는 또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되어 하나님과의 교통을 단절시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했지요. 시편 66편 18절에 시편 기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백합니다.
가족 간에도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멀어집니다. 대화도 단절되고 아무 상관 없는 남남처럼 되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2.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근본의 문제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에는 높고 두꺼운 담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낮고 얇은 담이 있습니다. 각각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에 따라 근본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유형은, 중한 죄로 인해 담이 생긴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죄는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진정 돌이키면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을 심히 노엽게 하는 큰 죄악은 쉽게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죄를 구분하여 결코 범해서는 안 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사망에 이르는 육체의 일입니다. 또 히브리서 6장의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 히브리서 10장에서 경고하는 ‘진리를 알면서 짐짓 짓는 죄’, 마태복음 12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육체의 일에는 사망에 이르는 육체의 일과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육체의 일이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육체의 일이란 가령 누군가가 미워서 혈기를 못 참고 때렸다면, 이는 행함으로 나타냈기에 육체의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회개하고 돌이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돌이켜지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기억지도 않으십니다.
그런데 어느 것은 육체의 일을 행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회개의 영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망에 이르는 육체의 일이지요.
혹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기도하며 행해 나가는데도 사업이 불통했다면 근본의 문제를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육체의 일을 행했던 것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지요. 지금은 행치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런 환경이 되면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 근본에서 뿌리째 뽑아야 합니다. 마음 근본에서 돌이켜야 하나님과 완전히 정리되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육체의 일을 범하는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곧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성경에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어떻게 믿을 때 구원받는다는 단서가 반드시 있지요. 죄를 회개하면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죄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가르쳐 줘야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고 축복받아 가는 것입니다.
또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짐짓 죄를 범하는 경우 역시 그 결말은 영원한 지옥, 불의 심판이라고 했지요.
이런 중한 죄들은 본래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는 죄이고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 회개의 영이 오지 않으니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는 것도 쉽지 않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특별한 은혜를 여러 차례 주셔서 이런 죄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물론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공의에 맞을 때 구원만큼은 받을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셨지요. 그래서 이제는 그 죄로 인해 온 질병이나 가정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오셨을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고 돌이키고자 하셨지요.
그런데 스스로는 도무지 회개할 수도 없었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었습니다. 죄의 담이 두터운 만큼, 또 오래된 만큼 허물기가 더 어려웠지요. 그러니 늘 곤고하고 답답하고 고통 중에 살아야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님과 죄의 담이 너무 크기에 스스로 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주시지 않으면 헐 수가 없지요. 그래서 히브리서 6장, 1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주시지 않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것은 회개하고 돌이켜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는 것일까요?
사망에 이르는 죄들은 가벼운 다른 죄와는 다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를 죄인 줄 알면서 짐짓 지어가는 것입니다. 처음에 한 번, 두 번 죄를 지으면 하나님 뵙기도 민망해하고 부끄러워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 번, 네 번 거듭 지어가면 점점 민망함도 부끄러움도 사라지지요.
바늘 도적이 소도적 된다고 하듯이 한 번, 두 번 죄를 지을수록 마음에 선한 양심이 사라져 가고 반대로 악해집니다. 죄를 범하는 것도 처음에는 곤고한데 점점 거듭될수록 곤고함도 사라져 버릴 때가 있지요. 자꾸 짐짓 죄를 지어가니까 내 안에 선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무슨 죄든 그렇습니다. 선한 마음이 사라지고 악한 마음으로 바뀌며 하나님과의 죄의 담이 그만큼 두꺼워지니 스스로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외면해 버리신 지가 오래돼 회개의 영이 임하지 않으니 죄의 담을 헐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렇게 되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다 보면 또 다른 죄를 짓게 되고 점점 하나님과 죄의 담이 두꺼워져서 진리는 늘 들어서 알면서도 스스로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입술로는 회개한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돌이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많은 말씀을 들어서 이 죄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지, 죄의 결말은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런데 왜 회개한다고 하는데도 회개가 되지 않고 담도 허물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중심의 회개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회개했다고 했는데 똑같은 죄를 또 범한다면 이는 진정 회개한 것이 아니지요.
또는 다시 죄를 범치는 않았는데 깊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아직 회개가 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 회개가 아니고 거짓 회개이므로 오히려 담만 더 높이 쌓을 뿐이지요.
진정한 회개에는 증거가 따릅니다. 바로 ‘통회자복’을 하게 되지요. 통회자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말씀을 결단코 잊어버리지 말고 꼭 마음에 명심하셔서 하나님과 죄의 담이 무엇인지 찾아서 하나하나 허물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근본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죄의 담이 일절 없이 이제는 삶의 갖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 받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행복만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축복,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참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2-07 오전 11:38:46 Posted
2022-12-09 오후 2:07:1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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