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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철야 예배

제목
창세기 강해 (2) 하늘들 [창 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4.02.23
여러분 맹장 같은 것은 수술이 간단하기 때문에 그냥 병원에 가서 수술해도 됩니다. 돈 많이 드는 것도 아닐 것이고, 아마 맹장 수술은 간단한 줄로 알아요. 이것이 터져서 복막염이 되었을 때 어렵지요. 그래서 여러분들 위험한 상황이면 정말 믿음 좋은 분들은 믿음으로 하지만 웬만하면 병원에 가셔서 수술을 하셔도 괜찮아요. 그것을 믿음 없다. 그러지 않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맹장 같은 것은 병원에서 간단히 잘라 버리면 되니까 그렇게 하셔도 돼요. 그것을 믿음 없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믿음이 좋으면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면 하나님 또 가볍게 역사해 주시지 않습니까?

창세기 강해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천지 창조 이전에 홀로 계셨던 근본의 하나님의 모습과 마음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근본의 하나님은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온 우주에 널리 퍼져 계셨다 했습니다. 이렇게 홀로 계시던 근본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 경작을 시작할 마음을 품으셨고, 인간 경작의 마지막 날까지 정교하게 설계도를 그리셨습니다. 사람들이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먼저 설계도를 그리고,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땅 위로 건물을 쌓아 올리기 전에는 튼튼하게 떠받치도록 기초 공사를 단단하게 합니다. 그래서 건물을 쌓아 올리는 시간에 비해 기초 공사의 기간이 매우 깁니다. 하나님께서도 본격적인 인간 경작에 앞서 사전 작업을 하신 시간이 매우 길었는데, 그 시간 동안 근본의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이루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강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어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근본의 우주"라고 표현하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근본의 우주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기 전에 홀로 계셨던 우주라 했습니다. 또한, "근본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올 때는 소리를 머금은 빛의 모습으로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계시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근본의 빛", "근본의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개념들을 잘 이해하시고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근본의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들

근본의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위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있던 "소리를 머금은 빛"을 응집하심으로 하나의 빛의 형태가 되신 것입니다. "응집(凝集)"은 "한군데에 엉겨서 뭉침"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근본의 소리를 머금은 근본의 빛이 응집한 지점이 바로 영계의 정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근본의 소리는 처음부터 이 영계의 정점에서 울려 퍼졌다는 점입니다. 이 영계의 정점에서 울려 나온 근본의 소리가 근본의 빛에 스며들어 물결치듯 근본의 우주 전체에 널리 퍼졌는데, 다시 영계의 정점으로 응집되어 하나의 빛이 되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나로 응집된 빛 속에도 하나님의 본질인 "말씀", 곧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신 근본의 하나님은 다시 세 개의 빛으로 분리되셨는데,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분리되신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근본의 우주를 네 개의 하늘로 분리
근본의 하나님이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면서, 동시에 차원이 다른 "하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우주 공간"과 같은 개념입니다. 원래는 근본의 우주 하나였는데, 근본의 하나님이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면서 또 다른 우주들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는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있던 근본의 빛이 영계의 정점으로 응집되면서 빛의 세기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근본의 우주 어디나 빛의 세기가 같았다면, 이제는 영계의 정점이 가장 밝게 된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동일한 밝기의 전구 1만 개를 성전 안에 골고루 달아 놓았다면, 성전 어느 곳이든 밝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구 1만 개를 켰을 때와 밝기가 같은 전구 단 한 개만을 중앙에 켜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는 중앙에 켜 놓은 그 한 개의 전구와 가까울수록 더 밝으며, 멀어질수록 상대적으로 덜 밝을 것입니다. 이처럼 근본의 빛이 하나로 응집될 때 빛의 밝기 차이에 따라 다른 공간들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근본의 빛은 영적인 빛입니다. 따라서 빛의 밝기가 달라진다면, "영"이라는 속성의 "밀도"도 달라집니다. 영의 속성은 영원히 썩지 않고 변질되지 않는 성질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육의 속성은 상황에 따라 썩고 변질될 수 있는 성질입니다. 근본의 빛이 하나로 응집될 때, 정점을 중심으로 바깥쪽으로 갈수록 빛의 밝기와 영의 밀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원래 하나였던 근본의 우주는 이제 총 네 개의 우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네 개의 우주를 각각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 넷째 하늘이라 하셨습니다.

2)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이처럼 하늘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임을 암시하는 표현들은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느헤미야 9장 6절을 보면,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했습니다. 역대하 6장 18절 후반에 보면,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했습니다.
이 두 구절에 모두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하늘"이 하나 나왔고, 다음에는 "하늘들"이라 하여 두 개 이상을 뜻하는 복수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이 한 번 더 나옵니다. 이것만 봐도, 하늘이 최소한 네 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에 시편 68장 33절, 예례미아 10장 12절에도 "하늘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처럼, 하늘이 여러 개인 것은 성경에도 기록된 뚜렷한 사실입니다.

2. 영의 공간과 육의 공간

근본의 하나님께서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신 곳은 넷째 하늘에 속한 특별한 공간입니다. 따라서 넷째 하늘은 빛도 가장 밝으며, 영의 밀도도 가장 높습니다. 셋째 하늘은 넷째 하늘보다, 둘째 하늘은 셋째 하늘보다 빛도 약하고 영의 밀도도 낮지만, 이 둘째 하늘까지는 영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첫째 하늘은 육의 세계로서, 육의 속성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영의 속성이 거의 없고, 하나님의 근본의 빛도 거의 거두어졌습니다.

1) 오묘한 공간 분리
이 첫째 하늘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우리 육의 눈에 보이는 우주입니다. 첫째 하늘은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근본의 우주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둘째, 셋째, 넷째 하늘도 근본의 우주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근본의 우주가 네 개로 구분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공간을 육의 공간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육의 공간 개념으로는 일정한 하나의 공간을 네 개로 나누면 원래 크기보다 작은 네 개의 공간이 됩니다. 그러나 영의 공간 개념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영의 공간은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넓은 우주 공간은 네 개로 나눠도 끝없이 넓은 우주 공간 넷이 됩니다. 아무리 여럿으로 나눠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근본의 우주가 네 개의 하늘로 분리가 됐다 해도, 각각의 하늘들에 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의 세계인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은 물론이요, 육의 세계인 첫째 하늘도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아직 우주의 끝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끝없이 넓은 우주"라고 표현합니다. 육의 세계인 첫째 하늘도 이러한데, 영의 세계인 다른 하늘들은 얼마나 넓을지 상상하기도 벅찬 일입니다.

그런데 근본의 우주가 네 개의 하늘로 분리되던 당시에는 그 하늘들의 "내용물"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용도에 적합하게 공간만 나누어 놓으셨을 뿐, 그 안의 내용물은 아직 창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도 용도에 따라 집 안의 공간의 크기와 위치를 정합니다. 안방, 아이들 방, 거실, 부엌, 창고 등 각각의 용도에 따라 공간의 크기와 위치를 정하고, 벽을 세워서 각 공간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집을 지은 직후에는 벽을 세워 공간만 구분되었을 뿐 각각의 공간은 비어 있습니다. 각 공간에 필요한 가구나 생활용품 등이 전혀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근본의 하나님께서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면서 근본의 우주가 네 개의 하늘이 되었을 때가 바로 이런 단계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텅 빈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었습니다. 은하계들과 무수한 별들은 근본의 하나님께서 홀로 계셨던 근본의 우주 안에 이미 있었습니다. 근본의 하나님 홀로 계셨다 해서 근본의 우주 공간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별들과 그 별들의 모임인 은하계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단, 그 당시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지구가 포함된 우리 은하계는 없었습니다. 지구와 태양계와 우리 은하계는 인간 경작의 터전으로서 조금 더 나중에 창조됩니다. 이런 근본의 우주 공간 중에서 근본의 하나님께서 하나의 빛으로 응집하실 때 영의 속성이 거의 거둬진 공간이 바로 우리 육의 눈에 보이는 우주입니다.

2) 인간 경작을 위해 분리된 하늘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용도에 따라 하늘들을 분리하셨습니다. 먼저, 첫째 하늘은 인간 경작을 위한 터전으로 삼기 위해 마련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둘째 하늘은 인간 경작에 필요한 어둠의 영들이 머물 공간으로, 또 생령으로 창조될 아담을 위한 공간으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은 인간 경작을 통해 얻어질 알곡들이 들어가는 천국을 짓기 위해서 마련하셨습니다. 천국이 셋째 하늘에 있다는 것은 성경에도 분명히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 전반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서는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는데, 그가 간 곳이 "낙원"이었다는 것입니다. 낙원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천국의 여러 처소 중 하나입니다. 이를 통해, 셋째 하늘은 천국이 있는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공간입니다. 근본의 하나님이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신 곳이 이 넷째 하늘에 있으며, 넷째 하늘은 이전의 "근본의 우주"와 차원이 같은 공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용도에 적합한 차원의 하늘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내용물은 채워지지 않았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 하늘에는 인간 경작의 터전인 지구와 태양계, 우리 은하가 아직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하늘에도 아직 천국이 형성된 것이 아니고, 천국을 만들기에 적합한 영의 공간만 형성되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근본의 우주에서 네 개의 하늘들로 처음 분리됐을 때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후의 하나님의 창조 역사로 내용물들이 점차 채워지게 됩니다.

3. 영의 공간에 대한 개념 이해

앞서 영의 공간은 한계가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의 공간에 대해 한 가지 개념을 더 이해해야 합니다. 육의 공간 개념으로는, 4층 건물이라면 1층 위에 2층이 있고, 그 다음은 3층, 그 다음은 4층이 있습니다. 그래서 1층에서 4층으로 가려면, 반드시 2층과 3층을 거쳐야 합니다. 반대로 4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려면, 3층과 2층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영의 공간은 다릅니다. 4층에서 2층이나, 1층으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1층에서 3층 또는 4층으로 바로 갈 수도 있습니다.

1)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공간 이동
첫째 하늘은 육의 세계이고,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은 영의 세계라 했습니다. 만일 모든 하늘들이 육의 세계라면, 마치 건물의 각 층처럼 첫째 하늘 끝에서 둘째 하늘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또한 둘째 하늘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로 셋째 하늘이 시작되어야 하며, 넷째 하늘도 셋째 하늘 위쪽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하늘에서 넷째 하늘에 가고자 하면, 일단 첫째 하늘 끝까지 가서 둘째 하늘로 가야 합니다. 둘째 하늘도 다 지나야 셋째 하늘에 이르며, 셋째 하늘을 다 지나야 비로소 넷째 하늘에 이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약 2천 년 전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첫째 하늘 어딘가를 지나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셋째 하늘이 있는 천국에 가셔서 우리의 영원한 처소를 짓는 일을 총감독하시고,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 하셨습니다. 만일 첫째 하늘을 다 지나야 둘째 하늘이 나오고 둘째 하늘을 지나야 셋째 하늘이 나온다면, 주님께서 빛의 속도로 가신다 해도 아직 첫째 하늘에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장 9절에 보면, 주님께서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했습니다. 주님께서 첫째 하늘의 어느 지점까지 올라가시자, 곧 구름에 가렸고 그 후로는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는 영의 세계, 그중에서도 넷째 하늘로 통하는 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굳이 첫째 하늘 끝까지 가시지 않아도, 또한 둘째, 셋째 하늘을 거치지 않아도 곧바로 넷째 하늘에 갈 수 있으셨습니다.
또 다른 예로, 스데반 집사가 영안이 열려 영의 세계를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56절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했습니다. 즉,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영안이 열려서 보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서신 주님이 보였습니다. 하늘이 열리니, 첫째 하늘에서도 곧바로 넷째 하늘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2) 영적인 차원에 따른 공의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은 영의 세계이므로 육의 공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하늘들은 영의 세계로서 서로 차원은 다르기에 엄밀히 구분되지만, 공간은 서로 겹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각 하늘들의 빛의 세기와 영의 밀도가 다르다는 의미로서, 세상에서 말하는 차원 개념과 다릅니다.
여기서의 차원은 하늘들의 빛의 세기와 영의 밀도에 따라서 구분한 차원입니다. 영적인 빛의 세기와 영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넷째 하늘입니다. 따라서 넷째 하늘을 가장 차원이 높은 공간, 곧 4차원의 공간이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차원이 높은 곳은 3차원인 셋째 하늘이며, 그 다음은 2차원인 둘째 하늘입니다. 육의 세계인 첫째 하늘은 1차원으로 가장 낮은 차원입니다. 각각의 하늘들은 이처럼 차원은 다르지만 공간은 서로 겹쳐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째 하늘에서 영계의 문 하나만 열면, 곧바로 둘째 하늘 또는 셋째 하늘 또는 넷째 하늘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차원의 존재는 저차원의 공간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지만, 저차원의 존재는 고차원의 공간에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4차원의 존재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첫째 하늘에서 넷째 하늘까지 자유롭게 오고 가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짧은 시간 동안 첫째 하늘과 넷째 하늘을 오고 가신 기록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바로 안식 후 첫날 새벽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셨습니다. 당시 상황은 주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아버지께서 맡기신 십자가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신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아버지께 돌아가서 인사와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첫 순간에 무덤에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를 만났으므로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새벽, 곧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보면, 바로 그날 저녁 때에 주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했습니다. 이때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미 넷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뵙고 다시 첫째 하늘로 오신 것입니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첫째 하늘과 넷째 하늘을 오고 가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첫째 하늘에서 넷째 하늘을 다녀오는데 몇 시간씩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영의 세계는 시간의 개념도 육의 세계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제자들이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차원의 존재로서, 1차원인 육의 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첫째 하늘에 있는 존재들은 가장 낮은 1차원이기 때문에 첫째 하늘 밖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더 고차원의 존재가 된다면, 고차원의 하늘에 갈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원받은 영혼들은 천국 백성으로서 3차원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1차원인 육의 몸을 벗게 되면, 3차원인 영혼은 셋째 하늘의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살 동안에도 영의 마음, 온 영의 마음을 이루면 영의 공간을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영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영적인 빛의 세기와 마음에 이룬 영의 밀도가 셋째 하늘의 차원과 같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도 이제 믿음이 많이 성장하여 이러한 영의 공간을 많이 체험하시니 이해가 잘되실 줄 압니다.
성경에는 영의 공간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일들은 영의 공간 개념과 영의 시간 개념을 알아야만 이해가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원하신다면 "공간과 차원" 설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근본의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위해 가장 먼저 하신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소리를 머금은 빛의 모습으로 온 우주에 퍼져 계시던 근본의 하나님은 영계의 정점에 하나의 빛으로 응집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원래 하나였던 근본의 우주는 영적인 빛의 세기가 다른 네 개의 하늘로 분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늘들을 나누신 이유는 인간 경작을 위한 각각의 용도가 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으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끝없이 넓은 우주도 만드셨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얻으시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꼭 인간 경작에 합당한 참 자녀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련된 천국에서 아버지와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2-22 오후 4:23:25 Posted
2024-03-08 오후 3:17:3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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