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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 (4) 영의 분리 (1) [창 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4.03.08
지난 시간에는 근본의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신 과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근본의 하나님은 소리를 머금은 빛의 형태로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계시다가 영계의 정점에 하나의 빛으로 응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다시 세 개로 분리가 됐으며, 각각 사람의 형상과 같은 영체를 입으셨습니다. 근본의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각 독립된 개체로서 영체의 모습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각각의 영체 안에 담긴 영은 근본 하나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세 분은 마음도 하나요, 생각도 하나요, 능력과 지혜도 하나입니다. 이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표현합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의 분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의 분리

사람들은 흔히 몹시 바쁠 때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말합니다. 성도님들도 일이 너무 많을 때 내 몸이 둘이었으면 좋겠다고 한 번쯤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동시에 여러 곳에 가야하는 경우라면, 그러한 생각은 더욱 간절해질 것입니다. 물론, 요즘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어떤 장소에 직접 가지 않아도 한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가서 일을 처리하는 것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직접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이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합니다. 이럴 때,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과 직접 찾아뵙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이런 경우, 할 수만 있다면 몸을 분리해서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그곳에 있습니다." 말하며 아쉬움을 달래곤 합니다.
이러한 사람과 달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는 곳에 얼마든지 영체도 가실 수 있습니다. 또한 각각 다른 여러 곳에 동시에 가실 수도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신의 영을 무수히 분리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간부터 몇 시간에 걸쳐,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의 분리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 최초의 영의 분리
영계의 정점 한곳에 응집한 빛이 세 개로 분리된 이 일은 "최초의 영의 분리"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빛이 세 개로 분리됐다는 의미는 한 덩어리가 세 조각으로 나누어졌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근본 하나의 빛에서 이와 똑같은 빛 둘이 더 생겨난 것입니다. 이 최초의 영의 분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장이 찍힌 문서가 한 장 있는데 이것을 두 번 복사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원본 문서와 내용이 같은 사본 문서 두 장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문서의 내용이 같다 해도 원본과 사본의 가치는 다릅니다. 문서가 갖는 효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장이 찍힌 것은 원본 하나뿐입니다. 사본에도 인장의 표시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근본의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신 것은 원본 한 장으로 원본 두 장을 더 만든 것과 같습니다. 근본의 하나님, 본체(本體) 하나로 이와 똑같은 본체(本體) 두 개를 더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6절 전반에 주님에 대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 했습니다. 곧 성자 하나님, 예수님의 본체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와 같다는 뜻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본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근본 하나님의 본체와 똑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한 사건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오직 한 번 있는 일입니다.

2) 영의 분리는 곧 마음의 분리
영을 분리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근본의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나누셨고, 나눠진 마음에 각각 성자, 성령 하나님의 형체를 입히셨습니다. 그런데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마음"이 어떻게 독립된 "형체"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사람들도 마음에 있는 것을 겉으로 나타낼 수는 있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그 미운 마음을 말과 표정과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업신여기며 비난하는 말, 굳은 표정, 거친 행동 등이 나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그 마음은 말과 표정과 행동으로 나옵니다. 사랑한다는 말로 고백할 수도 있고, 밝고 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잡아 준다거나 안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품은 것을 단지 행동으로만이 아니라 하나의 형태로도 만드실 수 있습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실제 있는 존재로 창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로 근본의 하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마음 자체를 온전히 가진 성자, 성령 하나님을 분리해 내신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근본의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곧 아버지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아들의 격인 성자,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그대로 갖고 계시다 했습니다. 마음은 물론, 능력과 지혜도 같습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이 갖고 계신 능력, 곧 스스로 영을 분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성자, 성령 하나님도 똑같이 지니셨습니다. 성자, 성령 하나님도 자신의 영을 얼마든지 스스로 분리해 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의 영의 분리는 본체에서 분체(分體)가 나오는 것입니다. 본체에서 또 다른 본체가 나오는 영의 분리는 근본의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됐던 그때, 단 한 번뿐이라 했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분체를 무수히 분리해 내는 영의 분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모두 각각 하실 수 있습니다.

3)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의 분리
이러한 영의 분리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영이 있고, 천군, 천사들 그리고 악의 영들도 모두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영적인 존재란 영원불멸의 속성을 가진 존재를 가리키는데,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존재들인 천군, 천사들은 밝은 빛이 납니다. 반대로 어둠에 속한 악한 영들은 검은 색깔의 연기 같은 것이 둘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도 영적인 존재들이 있지만, 이들은 영의 분리를 할 수 없습니다. 영의 분리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마음에 품은 것을 형상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성부 하나님의 영의 분리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영의 분리는 "본체(本體)의 마음을 닮은 분체(分體)가 만들어지는 경우"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본체로 직접 함께하실 수 없는 곳에 영의 분리를 하여 분체를 보내 주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함께 해야겠다., 또는 감찰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으신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영의 분리를 통해 하나님의 분체로 형상화되어 본체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1) 성부 하나님의 본체와 분체
구약 시대에는 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2장 7절, 창세기 26장 2절, 창세기 26장 2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이삭에게 각각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이 경우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본체가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분체가 오신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본체가 친히 이 땅에 강림하신 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19장 10-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이틀 동안 자기 옷을 빠는 등 스스로 성결케 합니다. 제 삼일 아침이 되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시내산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가 친히 강림하실 때 이처럼 특별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 출애굽기 33장 23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본체의 형상 중 "등"만 보여 주신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얼굴을 보여 주시지 않은 이유는 출애굽기 33장 20절 말씀처럼, 여호와의 얼굴을 보고는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가 강림하실 때는 모세도 그 얼굴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12장 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는(모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했습니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모세였기에 여호와 하나님과 대면하여 명백히 말할 수 있었고, 또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차이
한편,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을 때는 "여호와"나 "여호와 하나님"이란 호칭이 등장합니다. 이는 본체로든, 분체로든 상관없이 그 일의 주체가 아버지 하나님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여호와"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스스로 있는 자"란 뜻입니다. 그냥 "하나님"이라고만 나올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본문 창세기 1장 1절에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모든 창조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천지창조의 역사를 아버지 하나님 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음을 나타냅니다. 물론 창조 역사를 주도하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자, 성령 하나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0절에 보면, 세상은 그로 (곧,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자 하나님도 창조의 권능이 있으시기에 예수님으로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많은 창조의 역사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려 내신 일은 창조의 권능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만 명하실 때 시공을 초월하여 병든 사람이 나을 수 있었던 것도 창조의 권능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생물인 바람과 파도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일도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창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같은 창조 사역을 설명한 창세기 2장 4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했습니다. 앞에서는 분명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창조의 사역을 하셨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왜 여호와 하나님, 즉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표현한 것일까요? 이는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사역을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체로 기술한 것이고, 창세기 2장 4절부터는 아버지 하나님을 주체로 기술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의 역사를 함께 이루셨지만, 주도적인 역할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세 형제가 함께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세 형제가 똑같이 지분을 나누어 가지고 회사 운영도 함께 의논하여 하기로 했지만, 대표 자리는 큰형이 맡기로 했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그 회사에 대해 "저 회사는 누구의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 형제 공동의 것이라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큰형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맞는 말입니다. 세 형제가 함께 창업하고 함께 운영하니 세 형제 공동 소유이기도 하지만, 큰형이 대표를 맡았으니 큰형의 회사이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지창조 사역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도 맞고, 모든 것을 주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하는 것도 맞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시며 성경을 읽으면, 많은 것이 이해됩니다. 또한 어떤 경우는 왜 그냥 "하나님"만 나오고, 어떤 경우는 꼭 "여호와"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뿐이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영", "여호와의 신",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들도 나옵니다. 이렇게 기록된 장면은 대부분 하나님, 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체로 역사하신 경우입니다. 어떤 때 하나님과 여호와 뒤에 "신(神)"이 붙고, 어떤 때 "영(靈)"이 붙는지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똑같이 분체로 역사하실 때도, 각각의 역할에 따라 호칭이 달라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버지 하나님의 분체의 호칭은 "여호와의 신"과 "여호와의 영" 외에 베드로전서 4장 14절의 "영광의 영", 출애굽기 28장 3절의 "지혜로운 영", 이사야 4장 4절의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의 일곱 영" 등이 있습니다. 이 각각의 역할에 대해서도 차후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으로 분리하신 분체로서 어떻게 사역하시는지 말씀드렸습니다.

3. 성자 하나님의 영의 분리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도 각각 자신의 분체를 무수히 분리해 내는 영의 분리를 하실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면 성자 하나님께서는 분체로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의 분체
성자 하나님 역시 본체는 하나이시고, 본체의 마음에서 함께하시고자 하는 곳에는 영의 분리를 통해 분체를 보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곧, 구세주)가 되셨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을 "주님"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주의 신", "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란 표현은 바로 주님의 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외에, 로마서 1장 4절에 나오는 "성결의 영"도 주님의 분체입니다. 상황에 따라, 감당하신 각각의 역할에 따라 주님의 분체의 명칭이 다른 것입니다.
주님의 모든 분체는 본체의 형상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런데, 영안이 열려 보시는 분들 중에는 때론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때론 가시관을 쓰신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상황에 따라서 특별한 은혜와 깨우침을 주기 위해 그러한 모습으로 영의 분리를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을 때의 마음을 품고 영을 분리하시면, 분리된 분체는 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2)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주님의 분체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영의 분리를 알면, 성경 말씀들이 많이 이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수천, 수만 군데가 넘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많은 곳에 어떻게 주님께서 다 함께할 수 있으실까요? 바로 영의 분리를 통해, 주님의 분체가 그 모든 곳에 동시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본체는 천국에 계신데, 주님의 본체가 이 땅에 내려오시는 때는 7년 공중 혼인 잔치가 끝나고 천년 왕국이 시작될 때입니다. 그래서 그 전에 이 땅에 내려오실 때는 분체로서 오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 혹은 찬양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천사들에 의해 주님께 보고됩니다. 주님께서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시니, 마음이 기쁘십니다. 그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를 하며, 중심을 다해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내가 저들과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으시면, 이러한 주님의 마음이 주님과 같은 형상을 지닌 분체가 분리되어 그곳에 가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 말씀 그대로,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비유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님의 분체가 영으로 오십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두시는 곳이면 어디나 이처럼 주님께서 영으로 함께해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은 이렇게 함께하시면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도 주시고, 은혜도 주십니다. 회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회개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천국에서 이 땅을 두루 살피십니다. 어느 곳에서 주님을 간절히 찾는지 살피셔서, 주님의 영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모여서 주님, 함께해 주세요. 한다고 주님이 그들 모두와 함께하시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여서 주님을 찾을 때에만 주님께서 영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주님의 영의 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예가 마가복음 16장 20절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 승천 후 이 땅에 남겨진 제자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이때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표적을 나타내 주심으로써 복음이 참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즉, 주님의 분체인 주님의 영이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분체라 할지라도, 주님의 영이 함께하시면 이처럼 표적도 나타납니다. 표적이 나타날 때는 겉으로 확연히 눈에 띄는 역사가 따릅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고, 눈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보게 되며,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이 듣고 말하게 됩니다. 주님의 영이 함께하시면, 이런 표적과 함께 기사도 따르며 다양한 권능의 역사도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 하나님의 영의 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2024-03-07 오후 7:46:45 Posted
2024-03-09 오후 9:56: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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