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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 (5) 영의 분리 (2) [창 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4.03.15
지난 시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하시는 영의 분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영의 분리까지 말씀드렸는데, 이번 시간에는 성령 하나님의 영의 분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령 하나님의 영의 분리

성령 하나님도 본체와 분체가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서,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신 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나 주님처럼 독립된 개체로서, 사람의 형상과 같은 영체도 입으셨습니다.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본체를 지금부터 "성령님"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1) 성령님의 분체
성령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처럼 분체를 스스로 분리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대표적인 성령님의 분체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에 임하시는 "성령"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성령님이 영을 분리해 내신 분체가 바로 "성령"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을 높여 부를 때 "성령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성령"은 대부분이 성령님의 영, 곧 성령님의 분체입니다. 이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분체인 성령님의 영은 "성령"으로서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름과 형태로 다양하게 역사하셨습니다.
먼저, 구약 시대에는 주로 "성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를 들어, 역대상 12장 18절에는 "때에 성신이 삼십 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했습니다. 에스겔 43장 5절에도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왜 "성신"이라고 했는지는 나중에 "영"과 "신"의 차이를 설명할 때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성령님의 분체를 일컫는 또 다른 명칭으로는 요한복음 14장 26절 등에 나오는 "보혜사", 요한복음 14장 17절의 "진리의 영", 에스겔 36장 26절의 "새 영(즉, 새로운 영)", 갈라디아서 4장 6절의 "아들의 영"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살펴보면, 성령님의 분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는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렸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고 "불의 혀" 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성령님의 본체의 형상대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주님의 모습과 같은 것처럼, 성령도 본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령은 성령님 본체의 형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꿈이나 환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령님의 본체의 모습을 원래 모르기 때문에, 보아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성령님이 일정한 형상을 입으셨다고 미처 생각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성령은 단지 불이나 바람이나 비둘기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만 생각하여, 스스로 한계를 짓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본체가 이 땅에 친히 내려오신 경우도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본체는 이 땅에 예수님으로 오셔서 그리스도가 되셨지요. 이처럼 성령님의 본체도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잠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신 적이 있지요. 앞으로 창세기 강해를 통해 이 부분도 풀어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2) 성령의 역사
주님의 영이 함께할 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은혜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분체인 성령이 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17-18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곧, 성령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면,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등 각종 신령한 은사도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2장에 더 자세히 나옵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등이 있습니다. 물론, 성령이 임한다고 해서 이 모든 은사가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합당한 마음 그릇을 준비한 사람에게 성령님의 뜻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13절 전반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지을 때,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늘 하나님의 뜻을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날로 성장하여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극한 성령의 보살핌을 감사함으로 받아 미세한 성령의 음성이라도 귀 기울여 들으며, 어떠한 성령의 주관에도 온전히 순종하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호칭을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

이제부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분체로 사역하실 때, 각각의 역할에 따른 호칭의 의미를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호칭들을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서 여러분과 하나님의 관계성이 달라지며, 응답과 축복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호칭에 따라서 친밀한 정도가 다름
이해를 돕기 위해, 어떤 대기업의 회장을 비유 들어 보겠습니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분을 "회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회장님의 아들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아들이라고 해도, 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아들도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회사의 공식석상에서 아버지를 부를 일이 있다면 그 때는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아버지"라고 불러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경우에 더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장님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 회장님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회장님은 자신을 "회장님"이라 부르는 회사 직원과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과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 중에 누가 가장 가깝게 느껴질까요? 마음에서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히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일 것입니다. 이처럼, 호칭에 따라 친밀한 정도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2) 호칭에 따라 응답과 축복의 차원이 다르며, 권세도 다름
한 가지 더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대부분 저를 "당회장님"이라 부르십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신 분이나 외부 교회에서 기도받으러 오신 분들 중에는 저를 "목사님"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회장님" 하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제게 기도를 부탁한다면, 제 마음에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또, 어떤 사람이 저를 가장 바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당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입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바 아버지" 등으로 부를 수 있는데, 이 각각의 호칭들은 부르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정도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응답과 축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항상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진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있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가 되실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트리기 전의 이름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후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와 같은 말로서, "이미 구세주가 되신 분"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그냥 "예수님"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럴 때 기도 응답의 차원과 권세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원수 마귀 사단이 무서워서 떠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는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다"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밝히 알았던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바로 알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칭하는 명칭이 30여 가지가 있는데, 이제부터 각각의 의미를 하나하나 잘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1985년도 제 3차 주의 종 교육 때 풀어 주셨습니다. 영에 대해 밝히 알아야 능력 있는 주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영의 말씀을 양식 삼는 만큼 능력 있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을 영으로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신(神)과 영(靈)의 차이

성경에서 그냥 "하나님"이라고 할 때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할 때의 차이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을 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신 경우라 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 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표현했을 때는 그 일의 주체가 성부 하나님이신 경우입니다. 성부 하나님께는 구약 시대에 친히 일하셨으므로 "여호와"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만 나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성부 하나님을 지칭할 때는 "아버지", 또는 "아바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으로 표현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였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여호와의 차이를 잘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영", "여호와의 신", "여호와의 영"이란 표현도 나옵니다. 어떤 때는 신(神)이 붙고, 어떤 때는 영(靈)이 붙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이 있다면, 사람들은 이 아들을 보고 크게 두 가지로 반응합니다. 먼저는 "저 사람은 자기 아버지 얼굴을 판에 찍어낸 것처럼 빼닮았다." 말합니다. 이는 그 사람 얼굴의 생김새, 곧 외형에 초점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 사람의 아버지도 참 점잖은 분이셨는데, 아들도 아버지를 닮아서 참 점잖네." 하거나, "저 사람 아버지도 혈기가 많았는데, 아들도 똑같다." 말하기도 합니다. 이때는 그 사람의 외형이 아니라 성품에 초점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뒤에 신(神)을 붙일 때와 영(靈)을 붙일 때의 차이도 이와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에 중점을 둘 때는 신(神)을 붙여서 하나님의 신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중점을 둘 때는 영(靈)을 붙여서 하나님의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영(靈)이란, 진리, 선, 사랑 등의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킵니다. 이는 모든 비진리를 총칭하는 육(肉)과 반대되는 의미의 영으로서, 영원불멸하는 존재로서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나 사단 마귀를 영적인 존재라고 하는데, 이때 말하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영의 세계에 속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신(神)과 짝을 이루는 영(靈)은 이런 존재적인 의미의 영(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담긴 진리, 선, 사랑 등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 "영의 일꾼", "영적인 모임" 등 이럴 때의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나 일꾼이 천사 같은 영의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진리, 선, 사랑 등의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사람이요, 일꾼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영(靈)을 붙일 때는 내용물에 초점을 두는 것이고, 신(神)을 붙일 때는 내용물을 담고 있는 형상에 초점을 둔 것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셨다고 해서, 아무런 형체도 없이 나타나신 것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분체로 역사하셔도 분체의 형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사를 받는 사람이 분체의 형상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분체로부터 느껴지는 마음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실 때 형체만 있고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역사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분체의 형상에 초점을 두어 표현한 것입니다.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느 것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표현이 다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신"이란 표현만 나오고,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은 없습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때, 주로 하나님의 형상에 초점을 두어 표현했습니다. 반대로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만 나오고, "하나님의 신"이란 표현은 없습니다. 주의 신과 주의 영, 성신과 성령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종합적으로 지칭하되, 여호와, 주,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각각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형상에 초점을 둔 구약 시대에는 주로 신(神)을 붙여서 여호와의 신, 주의 신, 성신이라 표현합니다. 마음에 초점을 두는 신약 시대에는 영(靈)을 붙여서 주의 영, 성령이라 표현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을 뺀 이유는 "여호와"란 표현이 오직 구약 성경에만 나온다고 앞서 말씀드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약 시대에는 주로 신(神)을 붙이기에 "여호와의 영"이란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표현이 성경에 몇몇 있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데, 차후에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2024-03-14 오후 4:20:56 Posted
2024-03-29 오후 3:15:3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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