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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청년

제목
참 마음 청년선교회 헌신예배 [히10:22]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9.05.10
이 시간은 “참마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가지고 2009년도 청년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비진리의 검은 마음과 진리의 하얀 마음, 그리고 각 사람이 나름대로 선(善)의 기준을 잡아 놓은 양심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의 양심은 선하지만, 어떤 사람의 양심은 악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마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진리의 하얀 마음입니다. 지금부터 참마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릴 때, 진정 변화와 생명으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합니다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은 영과 육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여러분이 단에서 증거되는 말씀만 잘 명심하고 있어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간혹 회개하는 분들 중에서 “그것이 그렇게 큰 죄인 줄 몰랐습니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동안 들은 무수한 말씀들을 양식 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개척 때부터 “남녀가 단둘이 차를 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입니다. 단둘이 차를 타면 반드시 불의가 싹틉니다.” 하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불순종한 사람들은 “밤길에 혼자 보내는 것이 위험해서 태워 줬습니다.”, “상대와 목적지가 같은 방향이라서 차비를 아끼도록 태워 줬습니다.”, “상대가 믿을 만한 분이라서 함께 탔습니다.” 하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또는 자기 나름의 타당한 이유에서 그랬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만든다면, 그것은 오히려 악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사랑장 강해 등을 통해, 영적인 사랑과 육적인 사랑을 구분할 수 있도록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양식 삼지 않으면, 막상 자신이 실제 상황에 놓일 때 영과 육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성 간에 접근해 오는 상대방이 처음에는 영적인 사랑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음을 쉽게 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직과 질서 가운데 영혼을 관리하는 관계가 아닌데도 날마다 암송 성구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 줍니다. 또 특별히 육적인 내용이 아닌, 영적으로 격려하는 내용을 보내 주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상대가 내게 영적인 관심과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된 사람은 상대가 아무리 영적으로 포장을 해도 그 안에서 육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포장된 모습에 속지 않으므로, 더 이상 관계가 진전되지 않도록 단호하게 끊습니다. 반면에, 말씀이 생명 되지 못한 사람은 이런 경우에 영과 육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상대가 영적이라고 착각하며 마음을 놓고 상대에게 반응합니다.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주기도 하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점점 가까워지게 되면, 나중에는 본색을 드러냅니다. 영적인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육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유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진리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대해, 갈라디아서 3장 3절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앞으로 이런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에서 나오는 말씀을 명심함으로 선과 악을, 영과 육을 온전히 구분해서 항상 선과 영을 택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2. 자신의 마음에 있는 악을 발견해야 합니다

선과 악을 구분했다면, 이제는 ‘내 마음에는 얼마나 악이 있는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의 경우처럼, 선과 악을 구분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마음에도 그러한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상대가 육으로 접근할 때 넘어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마음에도 상대와 같은 육의 마음, 곧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 있는 악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의 탓만 하고 상대만 원망한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마음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악은 말과 행동으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마음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시,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유난히 거슬리거나, 너무 들레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불편합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정받는 사람인데, 여러분은 그의 부족함과 단점이 더 크게 보입니까? 이런 경우가 있다면, 자신의 마음에 얼마나 시기, 질투가 많은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교만하며 들레고자 하는 마음인지도 발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42절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티가 보이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에 악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악을 싫어하시는지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육의 마음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지를 중심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 전반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5장 19~20절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악과 육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철저히 깨달아 마음 중심에서부터 싫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퀴벌레 하나만 보고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피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음에 있는 악은 바퀴벌레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끔찍하고 더러운 것입니다. 아주 조금만 있어도 역겨운 냄새가 나는 배설물보다, 악은 더 더러운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마음의 악이 발견될 때 즉시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배설물과 같은 악을 좋아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 파리가 더러운 곳을 찾아 알을 낳듯이, 원수 마귀 사단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 마음의 악을 발동시킵니다. 죄를 짓게 하여 사망으로,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기에 악을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심히 미워하십니다.

잠언 6장 16~19절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하셨으니 여러분도 악을 발견하여 철저히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3. 발견한 악을 뽑아내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악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깨달으면 당연히 악을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악을 뽑아내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담당하시는 분야입니다. 사람의 몸과 결합된 죄성과 마음에 심겨진 악의 뿌리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는 벗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편에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악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매달려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 특히 성령의 불세례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불세례는 성령 받은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질병의 균이나 바이러스는 물론 죄성도 태워 없앨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9절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했는데, 이 소멸하는 능력이 있는 불을 받는 것이 바로 성령의 불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과 결합된 죄성을 태워 없앨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불세례뿐입니다.

이러한 불세례를 받으려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는데, 그럴 때 불세례를 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너무 점잖게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도, 불세례도 임하기 어렵습니다. 간절한 사모함으로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땀이 나도록 뜨겁게 기도할 때라야 성령의 불세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면, 온몸이 뜨거워지고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어서 날아갈 듯이 몸이 가벼워집니다. 피곤함도 사라지고, 질병균도 태워지며, 죄성도 태워져 없어집니다. 그래서 스스로 버리기 힘든 육신의 일이나, 끊기 힘든 육체의 일도 끊을 수 있고,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술이나 담배는 사람이 억지로 끊으려면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면 이런 것은 자동으로 끊어집니다. 마시고 싶은 마음, 피우고 싶은 마음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면 죄를 짓고 싶은 마음, 곧 육신의 정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더 쉬워집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세례를 한 번 받았다고 해서, 육신의 정욕이 전부 태워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불세례를 받을 때마다 죄성이 태워져서 조금씩 농도가 옅어지고, 육신의 정욕도 그 강도가 약해집니다. 그런데 이때 다시 세상적인 것이 틈탄다면, 조금 약해졌던 육신의 정욕이 다시 불붙고, 성령의 충만함은 식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을 다 뽑아내기까지는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잡초는 뿌리를 남겨 두면 금방 다시 자라는 것처럼, 죄성도 발견하여 한 번 회개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근본의 죄성까지 뽑아야 하며, 다 뽑아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자신을 점검하며 기도해 나가야 합니다. 불세례 한 번으로 모든 죄성이 태워지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쉬지 말고 중심을 다해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항상 이러한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5-11 오후 10:08:59 Posted
2018-03-15 오전 11:31:2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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