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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선교회

제목
두루마기를 빠는 자 빛과소금선교회 헌신예배 [계3:4-5]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8.06.27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두루마기는 영적으로 마음을 뜻합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마음의 더러움을 벗어 버리고 성결케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두루마기를 깨끗하게 빠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간음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버려야 하는 간음은 육적인 의미의 간음도 포함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영적인 간음은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이 세상을 사랑하여 취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5절에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했습니다.
만약 남편이 있는 여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는 남편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세상을 사랑한다면, 남편 되신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며 영적으로 간음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세상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주관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 원수 마귀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원수가 된 사람이라면 구원을 바랄 수 없습니다.
육적인 간음과 영적인 간음 중에, 언뜻 생각하면 육적인 간음이 더 큰 죄인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간음이 없다면 육적인 간음도 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사랑한다면 육적인 간음은 자연히 버리게 됩니다. 세상 사랑하는 마음, 곧 영적인 간음이 있기 때문에 육적으로도 범죄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의 두루마기를 빨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에는 늘 영적인 것들에 대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영의 것들을 사모하지 않으면, 육의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는 가운데 마음과 생각에 세상 정욕이 밀려들어오기 쉽습니다. 저 사람이 입은 옷이 참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나도 저런 옷을 새로 사 입어야지, 계절도 바뀌었는데 방 안의 장식이 지겨우니까 새로 단장해야지, 요새 유행하는 머리는 어떤 스타일일까, 어떤 음식점이 새로 생겼다는데 가봐야겠다 생각하면서 육적인 것들에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힘들게 일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풀어볼까, 어떤 사람을 만나서 위로를 받을까 하면서 세상의 즐거움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이 세상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자극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자극을 좇아 육을 취하게 되면 그럴수록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5절 후반에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은 매장에서 많은 사람을 대하느라 몸과 마음이 곤해서 영의 것을 생각할 여유가 별로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땅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항상 하늘을 바라봄으로 열심히 두루마기를 빠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상대와 나를 비교하고 상대를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상대와 비교하고 판단하면서 많은 악이 나옵니다. 낙심하며 시기 질투하기도 하고, 상대의 허물을 수군거리면서 서로 신뢰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윗분이나 주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자신보다 더 높은 직분을 받는다면, 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는 것처럼 감사하고 저 분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내가 섬기고 힘껏 도와야겠다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상대를 시기하여 허물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저 일꾼은 사실 부족한 것이 많은데 사람들 앞에서만 잘 보이려고 저렇게 행동한다, 윗분들은 겉모습만 보고 편애하신다." 하면서 상대를 깎아 내리려고 하기도 하고, 나는 오랫동안 충성하며 섬겼는데, 왜 저 일꾼보다 사랑을 못받아야 하나? 하면서 마음이 상하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진정 천국을 소망한다면, 누가 더 사랑을 받고, 누가 더 칭찬을 받는가?, 이 땅에서 내가 저 사람보다 얼마나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사는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정녕 모든 사람을 섬기는 마음인가?, 상대의 유익을 위해 내가 더 희생하는가?, 나는 참으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가?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럴 때라야 비로소 여러분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받아 많은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흥을 원하신다면 먼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나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유통업계와 요식업계는 부흥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주일에도 근무하고 늦은 시간까지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릇이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십니다. 주변 사람들은 평소 여러분의 모습을 볼 때, 전도하는 말을 들을 때 감동을 느끼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습니다. 저렇게 강청하니 딱 한번만 가보자 하고 왔다가, 여러분의 사랑과 충만함에 은혜를 받아 다음에 또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 되어 그릇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부어주실 수 있습니다. 만일 질서상 머리된 사람이라 해서 순종을 강요한다면 서로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볼 때는 이것이 옳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해도, 항상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밑에 있는 사람 역시 내 입장과 마음에 맞지 않는 일들에 불만을 품는다면 서로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항상 선으로 보고 들으며 선으로 생각하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서로를 위해 주며, 사랑으로 서로 하나 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두루마기를 깨끗이 빠는 것이고, 부흥을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3. 영을 열심히 붙좇되, 반드시 영적으로 붙좇아야 합니다

영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앞서 영의 세계를 뚫어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서 그 인도를 받는다면 훨씬 수월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붙좇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 수 있었고, 결국 모세의 뒤를 잇는 지도자가 되어 해와 달을 멈추게 하는 권능까지 행했습니다. 스승인 엘리야가 있었기에, 엘리사는 놀라운 역사들을 많이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는 목자를 열심히 붙좇는 것입니다. 하지만 붙좇음이 영적인 것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붙좇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어떤 열매를 내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붙좇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많은 사람들이 더욱 더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26절 후반에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봤다면, 천국이 믿어지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붙좇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했습니다. 단지 육으로 좋은 무엇인가를 얻고자 기대하고 붙좇았던 것입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여 예수님께 나온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께서 새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면 그 곁에서 권세를 잡으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왔거나,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통해 유익을 얻으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천국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천국을 원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유익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육적인 붙좇음은 이렇게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6장 68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갈 때도 시몬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러한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목자를 붙좇고 가까이 한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아 그 뜻대로 변화되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제가 육으로 따뜻하게 대해주기 때문이거나, 저에게 기도받으면 무조건 마음의 소원이 응답된다고 생각하거나, 목자를 사랑하고 붙좇는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붙좇아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영을 붙좇는 사람은 영의 사람을 가까이하는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 영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선을 행하는지 이런 것을 보고 배우려고 합니다. 한마디 권면을 해도 어떤 의미에서 그런 권면을 했는지 기도하며 깨우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도 자신에게 적용하여 변화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의 역사 속에 많은 것을 깨닫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변화된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깨우치고 마음에 명심하여 이뤄내는 것이 영적인 붙좇음의 열매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는 아브라함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또 그의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영으로 아브라함을 붙좇거나 영으로 하나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겨우 낙원에 들어갈 믿음에만 머물러 있어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목자를 붙좇고 사랑할 때도, 영의 사람들이나 성도들과 교제할 때도, 항상 목적이 무엇인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변화되기 위해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빛과 소금 선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주일을 지킬 수 없는 특수한 환경에 있는 영혼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춰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부흥의 불을 붙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천국의 영광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6-30 오후 5:47:48 Posted
2018-07-09 오후 10:39:1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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