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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106)  [창 6:22-7: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4.0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강해 일백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창 6:22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고 양식을 준비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대로 순종했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이었기에 모든 것에 형통했고 ‘여호와 이레’의 역사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한 순종을 함에 있어서 경험이나 지식, 기술 등이 아예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첫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지만 노아는 그만한 지식과 기술도 활용할 줄 알았지요. 이처럼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지식과 경험, 기술과 재능이 기본적으로 바탕이 돼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음식점을 차리려고 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본인은 요리에 대해서 잘 모르고 가게 터도 외진 곳에 잡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음식점이 잘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한다면 과연 잘 되겠습니까?
물론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받으면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속에서도 형통한 복을 받을 수 있지요. 하지만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조차 전혀 하지 않고 복 주시라고 기도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복 받을 ‘그릇’은 준비하지 않고 무조건 받기만 바라는 것과 같지요.

이와 반대로 아무리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복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자신의 육적인 능력과 한계 안에서 성실히 노력한 만큼만 성과를 낼 수 있지요. 이런 사람은 자신의 육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을 만나면 결국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 기술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지요. 자신을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의 길을 인도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노아의 순종을 통해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전한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변함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이 성경에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방주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몇 달 혹은 몇 년 안에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따라서 노아가 방주를 짓는 오랜 기간 동안 세상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노아의 하는 일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으니 그를 어리석다 놀려대기도 했지요.

여러분이 만약 이런 상황 속에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생기지 않겠는지요? 그런데 노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수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았지요. ‘오늘일까? 내일일까?’하며 조바심을 내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묵묵히 방주 짓는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순종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디게 성취되는 것 같아도 한 번 하신 말씀을 끝까지 믿고 변함없이 순종의 행함을 보여야 하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한 때에 맞추어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벧후 3:9에도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당장 이뤄지지 않으면 의심을 합니다. 충만함이 떨어지고 시험에 들기도 하지요.
노아는 어떤 상황에서도 조바심 내지 않았고 굳건한 믿음으로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왜 하나님께서 대홍수 심판을 이루려 하시는지, 자신과 가족들은 구원을 받아 장차 어떤 삶을 이어가게 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심판의 날이 시시각각 다가오므로 노아는 홍수로 멸망당할 사람들로 인해 늘 마음이 애탔지요. 방주가 완성되면 곧 홍수가 닥칠 텐데 이를 알지도 믿지도 못하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사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이 노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이에 노아는 열심히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었지요. 이럴 때에 노아가 하나님께 고백했던 내용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여, 지금 짓는 이 방주로 인하여 그날이 임박함을 느끼고 있으되 이 방주로 인해 기쁜 것이 아니요 오히려 안타깝고 심히 안타까울 뿐이니이다.
내가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고, 때를 좇아 아버지의 말씀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갔으며, 또한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밤낮 충성하였으나 이렇게 하나가 지어지고 하나가 완성되면 될수록 그날이 임박함으로 인하여 안타까울 뿐이니이다.
저는 아버지의 주신 명령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명심하여 하나하나를 이루어 옴으로 날이 갈수록 방주의 모양이 드러나고 정확하게 준비되어 가는 만큼 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에 심히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니이다.
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제가 앎이니이다. 그들에게 전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그들에게 말한다 할지라도 듣지 못함이니이다. 그들은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며 정녕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곳에 저와 저의 가족들이 들어가며 아버지의 말씀하신 대로 정해진 것들이 들어가게 되어졌으되 세상에 있는 저들은 어찌할까 생각할 때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진해질 뿐이니이다.
그러나 이처럼 안타까워한들 어찌 아버지의 마음과 같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겠나이까? 저는 정녕 아버지의 말씀에 의지하여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릴 수가 있음이나니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며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왜 아버지께서 방주를 내게 만들라 하셨고 내게 하나하나 이루시는지를 내가 느끼나이다.
그러나 저의 마음이 이토록 안타까운 것은 그날이 임박함을 느낌이나니 저들을 향한 저의 이 안타까운 마음을 아버지여 이해하여 주소서. 아버지여, 어찌하리이까? 그들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며,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고 있나이다. 아버지의 계획하심 속에서 이처럼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저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저들을 돌이킬 수가 있겠나이까.
아버지여,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리니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 가운데 이루어짐이니이다. 이 아들이 하나도 실수하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이룰 수 있도록 늘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소서.”

성도 여러분, 노아의 애타는 심정이 느껴지시는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의인 노아는 그만큼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바라보시며 애타하시고, 아파하시는 것을 노아도 함께 느끼고 있었지요.

성도님들도 마음을 영으로 일구는 만큼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이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보다 더한 상황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마 24:37-39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원하셔서 영적으로 ‘노아의 방주’와 같은 말씀 곧 ‘십자가의 도’를 밝히 알려 주셨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일로 보였듯이 고전 1:18 전반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후반절에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노아와 같은 심정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열심히 전파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참임을 확증하는 권능의 역사와 함께 외치고 외쳐야 하지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 섭리를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이뤄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끝)


2014-04-29 오전 2:01:34 Posted
2014-05-12 오후 11:21:0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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