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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1)  [계 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08.06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자신에게 어떠한 불행이 닥쳐올지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또한 세상 끝 날에 대해 염려와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 어떠한 천재지변이나 재앙으로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며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고통 가운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 인류 앞에 다가오고 있는 현실은 결코 낙관적으로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자연의 이상기후, 문명의 발달과 함께 발생한 환경 파괴와 이로 인한 환경의 재앙, 날로 늘어나는 불치, 난치의 질병들과 새롭게 등장하는 신종 질병들, 끝을 모르고 추락해 가는 인간의 도덕성과 날로 흉포해져 가는 갖가지 범죄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또한 종교와 종교 간에 첨예하게 대립되어 가는 국제 정세, 이러한 상황 가운데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불안과 염려 속에 지내게 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늘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며 나름대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들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미래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사람의 방법으로 미래를 대비한다 해서 그것이 완벽한 것이 될 수는 없지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이라도 그 영혼을 불러 가신다면 그때는 사람이 육적으로 준비해 놓은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워질 때 과연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겠으며, 그때를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바로 오늘부터 강해 설교가 시작되는 요한계시록에 그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들마다 정녕 마지막 때를 깨어 준비하며 신부단장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속히 되어질 일에 대해 세세히 기록케 하셨지요. 또한 장차 우리가 가야 할 천국 중에서도 가장 좋은 천국인 새 예루살렘에 대해 알려 주심으로 소망 가운데 달려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요한계시록에 대해 증거하는 교회들은 많지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어렵고 난해하기 때문에 함부로 읽어서도 안 되고 풀어서도 안 된다고 하면서 아예 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지요.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때가 가까웠다” 증거하면 마치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깨어서 신부단장 해야 한다.”고 증거하면 그런 말씀을 듣기 싫어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구요. 그러니 자연히 계시록의 말씀을 멀리하게 되고 더욱이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은 점점 묻혀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출 12:9-10에 보면 ‘어린양을 먹는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양식 삼아야 하는지가 잘 나와 있지요.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했습니다.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먹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 66권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통째로 양식 삼아야 한다는 뜻이라 했지요. 자기가 듣기에 좋고 편한 말씀만 골라서 읽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느 것 하나도 빼지 말고 다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하셨는데, 이는 아침, 곧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단장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의 뜻에 따라 당연히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열심히 읽고 들어서 양식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양식 삼기 원한다 해도 그것을 육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벧후 1:20-21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 (즉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을 먹을 때 ‘불에 구워 먹으라’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 역시 성령의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함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도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 가운데 대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풀기 위해 무수한 기도와 금식을 쌓아 왔습니다. 요한계시록 강해의 말씀도 바로 그러한 기도와 금식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풀어 주신 말씀들이지요. 요한계시록은 이미 지난 86년도에 한 차례 풀어서 강해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워낙 깊고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 차례에 걸쳐서 이 말씀을 풀어 설교하도록 하셨지요. 그러나 이제는 두 번을 더 풀어서 설교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두 번째 강해 설교를 할 때 기도로 잘 준비하면서 세 차례 풀어 받는 것과 같이 깊이 있게 설명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예언서들과도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설명해 나감으로 듣는 성도님들이 마지막에 되어질 일들에 대해 밝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나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귀한 말씀이 풀어져 나간다 해도 정말 중요한 것은 듣는 여러분의 마음과 태도입니다.

먼저는 여러분이 얼마나 복된 조건 가운데 신앙생활 해 나가는지를 깨달아야 하지요. 아무리 귀한 것을 주어도 받는 사람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따라서 여러분이 한 말씀 한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그 가치를 깨달아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풀어 주시는 것이 진정 의미 있고 값진 일이 될 수가 있지요.

또한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풀어지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은 마지막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본 제단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친히 보아왔지요. 개척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때그때 필요한 말씀들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점에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풀어 주신다는 사실에도 분명한 영적인 의미가 있지요.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에 더욱 깨어서 주님 맞을 준비를 잘 해 나갈 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의 흐름과 맞물려 본 제단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여러분에게 믿음이 됨으로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새 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오늘부터 증거하게 되는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 많은 분들이 영의 흐름에 동참하여 소망과 기쁨 가운데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계 1:1절과 9절에 그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대로 “요한”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요한”은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던 사도 요한을 가리키지요.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이외에도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기록한 요한복음 곳곳에 스스로를 가리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주님께서는 이처럼 사랑하시던 제자 중에 하나였던 사도 요한을 통해 너무나 깊고 중요한 내용이 담긴 요한계시록을 기록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지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라 하여 그것만으로 무조건 그에게 깊은 계시의 말씀을 허락하실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사도 요한이 주님과 교통하며 그처럼 깊은 계시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 자격이란 곧 악은 모양이라도 없이 성결되고 주님의 마음을 닮은 마음이지요.

이러한 상태에서 불같은 기도를 올릴 때 영계의 문을 뚫고 깊은 영적인 교통함 가운데 비밀한 계시의 말씀까지라도 끌어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지요.

사도 요한은 A.D. 95년,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대박해(大迫害) 때에 체포되어 끓는 기름가마에 던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졌음에도 사도 요한은 죽지를 않았지요. 이에 요한을 죽이려던 사람들은 대신 그를 ‘밧모’라는 섬에 유배시킵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곳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케 된 것이구요.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도 사도 요한이 이처럼 끓는 기름가마에 던짐을 받고도 살아난 이 사건을 하나의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끓는 기름가마에서 아무 해도 받지 않고 살아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구약 다니엘서에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달구어진 풀무불에 던져졌음에도 아무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난 기록이 있지요. 단 3:27에 보면,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께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만이 아니라 사도 요한에게도 그러한 역사를 베풀어 주신 것이며 오늘날도 얼마든지 그러한 역사를 베푸실 수가 있지요. 다만 그처럼 죽음이 피해갈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 그러한 역사를 끌어내릴 만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요일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지킴받을 수 있는 온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능히 건짐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도 요한을 통해 이 마지막 때에 되어질 비밀한 일들에 대해 계시하여 주심으로 그것들을 기록케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것이 육의 사람들이 볼 때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행한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님께서 육의 사람들까지도 주관하여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게 하심으로 영의 세계와 밝히 교통하며 주님의 계시를 받아 내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주관해 가셨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육의 사람들이 볼 때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육의 사람들의 마음까지 주관하심으로 결국은 그들도 하나의 도구로써 쓰임 받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1절 전반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계시가 누구로부터 말미암았고 어떻게 이러한 계시의 말씀이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계시’란 무엇일까요? 계시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를 하나님의 신이 영감으로 알려 주고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렘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 감동함을 입어 하나님과 교통하며 계시를 받게 되지요.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성신의 감동함으로 계시를 받았고. 신약시대, 즉 성령시대에는 성령의 감동함으로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처럼 계시 받은 내용이 선포되어 나갈 때 이것이 곧 예언이 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본문에 이러한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말씀한 것은 바로 사도 요한이 받은 이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첫 사람 아담은 늘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있었지요. “계시”라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아담은 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직접 가르침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지요. 영이 죽게 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더 이상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몇몇 사람들에게 성신의 감동함을 입혀 그들과 교통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인도해 오신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화목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고 성령을 받음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게 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다시 연결이 되어졌지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계시가 임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고전 14:26에 보면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하셨습니다.

분명히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계시”도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따라서 성령시대인 오늘날 계시는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임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계시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가장 첫머리에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이어지는 본문에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말씀하고 있지요.
마 11:27에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어찌하든 더 밝히 알고 깨닫기를 원하시지요. 자녀라 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거나 또는 막연히 알기를 원치 않으시며 아버지에 대해 밝히 알고 깨닫는 참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자녀를 찾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계시를 줄 수 있는 합당한 사람을 찾게 되면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됩니다.

본문에도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가운데 되어질 일들을 그때그때마다 합당한 사람들을 통해 미리 알려 주시고 행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암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그래서 사도 요한을 통해 그때의 일들에 대해 밝히 계시해 주신 것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한 천사를 보내셨지요.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여러 부류의 천사들이 있지요. 군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천사도 있고, 수종을 드는 천사도 있고, 찬양과 음악을 담당하는 천사도 있으며, 행정적인 일을 보는 천사도 있습니다. 한 나라의 조직을 보면 수많은 종류의 직무를 감당하는 공무원이 있듯이, 그 넓은 천국에도 수많은 부류의 천사들이 있어서 각각의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또한 천사의 세계에도 질서와 서열이 있어서 일반 천사가 있는가 하면 그들 위에서 관리하며 책임을 맡은 천사도 있고, 나라의 조직으로 말하자면 장관의 역할을 하는 가장 머리된 천사장도 있습니다.

유 1:9에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나오고, 눅 1:19에 보면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하여 가브리엘 천사가 나오는데 가브리엘도 바로 천사장이지요. 천국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천사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 아무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머리된 천사를 말하는 것이며, 곧 천사의 머리인 천사장급을 말합니다. 그리고 천국에는 성경에 기록된 이들 미가엘이나 가브리엘 외에도 많은 천사장들이 있지요.

사도 요한에게 주시는 계시의 말씀은 너무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들 천사장들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 담아 전할 수 있는 그러한 천사장을 택하여 보내신 것입니다.

나라에서도 대통령이 아주 중요한 일을 누군가를 통해 대신 처리하고자 할 때는 그만큼 대통령의 마음과 뜻을 잘 알아서 행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그만큼 지위와 권세가 있는 사람을 택하여 보내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만한 위치에 있는 천사장을 택하여 보내신 것이지요.

이렇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장이 전해 주는 계시의 내용과 사도 요한이 자신이 환상 중에 본 내용을 통해 마지막 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 그리고 되어질 일들에 대해 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내용이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1900여 년 전인데, 그때 당시에 “속히 될 일이라” 하신 것이 왜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이처럼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사도 요한은 왜 “속히 될 일이라” 기록한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생길 수가 있지요.

그러나 “속히 되어질 일이라”고 하신 것도 또한 “때가 가깝다”고 하신 것도 결코 사람의 말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역시 사람이 오래 산다 해도 100살을 넘기기란 쉽지 않지요.

또 오늘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일이든 한 달 후든, 일 년 후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불러 가시면 그 순간이 바로 그 “때”인 것이며 속히 될 일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러니 이 말씀을 듣고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언제 속히 다가올지 모르는 그 “때”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신다고 하신 게 언젠데 아직까지 안 오시지 않느냐’ 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들에게 속히 임한 그 “때”를 만났다는 사실이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내 때는 항상 가깝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불러 가시는 순간, 그 순간에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는 것이지요.

계시록 강해 첫 번째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여러분은 다시 한번 마음을 새롭게 하여 결단할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정말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계시록에 기록된 끝 날의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날들이 멀지 않은 때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요한계시록 강해를 허락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진정 깨달아서 온전한 신부단장을 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이 예언의 말씀을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하신 말씀대로 듣는 말씀을 지켜 행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셔서 진정 복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08-11 오후 4:44:46 Posted
2024-01-07 오후 3:08: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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