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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83) 알파와 오메가 [계 22:1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7.14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세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원래 하나님은 시작이나 끝이 없으십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존재하시며 무한한 공간 자체이시지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한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면 굳이 하나님에 대해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라 표현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영적인 의미를 모르면 이 세 구절이 다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이 각각의 구절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지요.

먼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하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가장 첫 글자와 가장 마지막 글자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첫 자인 A와 끝 자 Z에 해당하며, 한글 자음으로는 첫 자인 ㄱ자와 맨 끝에 ㅎ자에 해당하지요.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는 헬라 문명이 찬란히 꽃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알파와 오메가’는 단지 헬라어만 아니라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문자를 대표합니다. 인류는 문자를 가지고 생각을 표현하며 지식을 전달하며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알파와 오메가는 바로 지식의 시작과 끝을 말합니다.

문자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문명이 발전하고 전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자’라고 하는 수단이 있어야 하지요. 한 세대에 뛰어난 지식과 기술이 있어도 이것을 기록할 문자가 없으면 후세까지 전수되기가 어렵습니다.

인류 역사상 뛰어난 문명들도 그 문명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데에는 문자가 큰 역할을 감당했지요. 이러한 문자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 곧 ‘알파와 오메가’는 ‘이 땅의 모든 지식 혹은 문명의 시작과 끝’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 곧 지식과 문명의 시작과 끝이 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부모와 교사, 서적과 각종 대중 매체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지식을 쌓아 나갑니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볼 때 사람이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지식에 지식을 더하여 문명을 발달시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런 지식과 문명의 시작은 근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 지식을 쌓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후에 아담과 오랜 세월 동행하시면서 진리의 지식을 하나하나 담아 주셨습니다.

이 지식을 마음껏 활용하여 펼칠 수 있는 뛰어난 지혜도 하나님께서 주셨구요. 에덴동산에 살 때는 그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여 고도의 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이런 문명들에 대해서는 창세기 강해를 통해 자세히 설명했지요.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후로는 에덴동산에 살 때 누리던 뛰어난 문명을 이룰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늘날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원시적인 석기 시대가 수백만 년 이상 흘러서 청동기, 철기 시대로 발전한 것은 아니지요.

창세기 4장에 보면 이미 아담의 아들인 가인의 시대에 성을 쌓을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있었습니다. 또 몇 대가 지나 두발가인의 시대에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오구요. 이렇게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지식을 계속 쌓고 문명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문명이란 인류가 쌓아온 모든 역사의 집약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낸 모든 지식과 재능이 결집된 열매이지요. 이런 문명의 발달로 인해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지므로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갖습니다. 앞으로도 문명이 계속해서 발달할 것이며 그만큼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일들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구요. 가령 생명체를 만들어 내거나 질병이나 노화를 극복하여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을 줄로 예측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과 문명이 한없이 발전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문명의 시작점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그 끝점도 분명히 정해져 있지요. 인류 역사의 모든 과정이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시작되고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문명의 끝은 언제입니까? 계시록 강해를 통해 들으셨던 것처럼 7년 환난이 끝날 무렵이 되면 전쟁과 자연 재해 등으로 인해 모든 문명은 거의 소멸됩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이 시작될 즈음에는 거의 원시적인 상태가 된다 했지요. 긴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지식도, 기술도 모두가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인간에게 지식을 주시고 문명이 발달하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이는 경작의 섭리를 위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최대한 많이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인류 역사가 이어져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셨지요. 그래서 아담 이후 6천 년이라는 기한을 정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지면에 번성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문자와 문명의 발달이 꼭 필요합니다. 문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될 수 있고 후세까지 정확하게 전달될 수가 있지요. 또 문명이 발달해야 이 복음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전파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찾고 만나야 할지 알 수 있지요.

이러한 경작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문자와 문명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므로 자신들의 좁은 지식과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지식을 우상으로 삼아 하나님의 영역을 넘어서려고 하지요. 그러나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의 사건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 이후로 이 사건이 있기 전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함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세워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할 때도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기에 사람들을 쉽게 규합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막으시기 위해 언어를 민족마다 서로 다르게 하셨습니다.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으므로 공사는 중단되었고,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지면에 뿔뿔이 흩어져 버렸지요.

이렇게 한 곳에 모여 살던 인류를 이 시점에 지면에 흩어지게 하신 것도 결국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들어 있었던 일이구요. 사람이 아무리 지혜와 능력을 동원한다 해도 결코 하나님의 뜻을 넘어설 수 없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없습니다.

잠 1:7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했고 잠 9:10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했습니다.

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지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많은 설교를 통해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결을 이룬 만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이시라 해서 악한 지혜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지식을 주셔도 사람 편에서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아 악하게 변질시킨 것이 있지요.

예를 들어 화약에 대한 지식을 선하게 활용하면 건축이나 채광 사업에 유익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악한 쪽으로 활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 수도 있지요. 다른 예를 들어 약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도 활용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독약을 만들 것인가 그 선택은 약에 대한 지식을 활용하는 사람에게 달려있지요. 원래는 선하게 진리에 맞게 쓰도록 주신 지식을 인간들이 사단의 역사를 받아들임으로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 하셨습니다. 앞에서 알파와 오메가라 하신 말씀은 삼위 일체 하나님 중에서도 특히 성부 하나님의 분야를 나타냅니다. 인류의 모든 지식과 문명을 시작하게 하시고 마무리 지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표현하지요.

물론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라는 이 말씀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세 분은 근본 하나이시며 결국 한마음 한뜻으로 사역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굳이 삼위 곧 세 분으로 분리를 하신 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께서 각각 감당하실 분야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 분의 사역의 특성에 비춰 볼 때 알파와 오메가 곧 지식과 문명의 시작과 끝은 성부 하나님에 주로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처음과 나중”이란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무엇의 처음과 나중이 되신다는 뜻일까요? 이는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 구원의 섭리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는 사역에 있어서 주님께서 처음과 나중이 되신다는 뜻이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함으로 인류는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태어난 후손들도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이었기 때문에 모두 사망을 당할 운명이었지요. 이런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 나셨지요.

고전 15:20에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사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는데 이것이 바로 ‘처음’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열매가 맺히면 그 안에는 생명의 씨가 있습니다. 그 씨가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열매를 맺지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므로 무수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골 1:6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했지요.

오늘날 성결의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은 여러분도 바로 주님의 아름다운 열매들입니다. 그리고 열매된 여러분들이 다시 이 땅에 뿌려진 생명의 씨앗이 되어 또 다른 많은 열매들을 맺고 있는 것이구요.

그래서 본문에 ‘처음’이라 하신 것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부활로 나오셨기에 주님 안에서 뭇 영혼들이 구원을 얻어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지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중이 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는 주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인류 구속의 사업이 마무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나중’에 대해서는 살전 4:16-17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주를 믿고 먼저 죽어 무덤에 장사된 자들은 주님과 함께 공중으로 옵니다. 살아서 신랑되신 주를 맞는 성도들은 홀연히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되지요. 이때가 바로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성취되는 때요 인간 구원의 모든 섭리가 막을 내리는 날입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려 농사를 지은 후에 모든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주님께서 알곡 된 영혼들을 거두시는 날이지요. 이처럼 재림을 통해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시는 주님에 대해 ‘나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처음이 되시고 나중이 되시고, 부활에 첫 열매 처음이 되시고 또 나중이 되시고

다음으로 ‘시작과 끝’이라 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성령 하나님에 대한 분야를 설명합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무엇의 시작과 끝이 되신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의미합니다.

농부가 수고하여 농사를 짓는 것은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을 거두리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도 알곡과 같은 영혼들을 얻기 위해서이지요. 선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영혼들,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된 자녀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참된 자녀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는 죄에게 순종하는 죄의 종,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죄악이 없는 깨끗한 마음이었지만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만큼 마음이 점점 죄악으로 더럽혀졌지요.

미움, 혈기, 시기, 질투, 간음, 욕심, 교만, 이런 육의 속성들이 마음에 하나하나 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참된 자녀가 되려면 우리가 이런 육의 속성들, 죄성들을 뽑아버리고 원래의 깨끗한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을 이루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닮은 영의 속성들을 심어나가야 하지요.

사랑과 선, 겸손과 섬김, 정직과 진실, 희생과 헌신 이런 것들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이 말씀을 다르게 표현하면 성경에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지 말고,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죄성들이 마음에서 뽑히고 깨끗한 마음을 이뤄가게 되지요.

반면 “무엇 무엇을 하라” 하신 것은 하고, 또 “지키라” 하신 것은 지키면 됩니다. 그러면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쉽지요. “하라” 하시면 그냥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 하시면 그냥 안 하면 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인생들은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죄인 되었을 때 행하던 구습 곧 옛사람의 습성대로 계속 머물러 있으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속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것을 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슥 4:6 후반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성령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먼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한 자녀들에게 내주하셔서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받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출발점이지요.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역사 속에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칠 수가 있습니다. 또 들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는 자기 안의 성령님께서 애통하시는 것을 느끼므로 마음이 곤고해집니다.

반면에 순종할 때는 성령님이 기뻐하시므로 자기 마음에도 기쁨과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롬 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지요.

이처럼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심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입게 하십니다. 예전에 행하던 어둠의 일들을 버릴 수 있도록 자꾸 자꾸 진리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온전한 성결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같은 성령으로 임하신 이후 성령님께서는 끊임없이 이러한 사역을 감당해 오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시작하실 때부터 성령님께서도 함께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도 많은 일들을 감당하셨구요.

그러나 성령님의 사역에 있어서 더 중요한 분야는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할례할 수 있도록, 각 사람의 마음 밭을 개간하여 성결된 참 자녀로 나오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성결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시면 인간을 경작하시는 성령의 사역도 끝이 나지요.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는 이 말씀 안에 얼마나 깊은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여러분은 들으셨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경작, 구원에 대한 모든 섭리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이 한 구절 안에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원수 마귀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섭리를 훼방하려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을 미혹해서 하나님을 배신하게 했지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했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수 없게 하고 악한 자들을 사주하여 성령의 사역을 계속 방해하고 있지요. 그러나 사단이 아무리 훼방하고자 해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공의와 측량할 수 없는 지혜 속에 구원의 섭리를 이뤄 가시지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지막 순간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이루실 것입니다. 참된 자녀들을 얻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이 경작이 끝날 때가 가까울수록 성령님께서는 더욱 불같은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세상의 어둠이 심히 짙을지라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살지라도 성도들이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도록 성령의 역사도 갈수록 더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본 교회를 세우신 것도 바로 이 경작의 끝이 되시는 성령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 경작의 시작이요 끝이 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불같은 역사를 베푸심으로 구원받을 모든 영혼들을 불러 모으시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보고 듣고 체험한 역사들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보다 크고 놀랍습니다. 이제, 이런 역사를 체험한 여러분이 먼저 성결된 참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구가 되어야 하지요.

고전 2:4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한다”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7-13 오후 4:50:00 Posted
2023-07-21 오전 11:08:1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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