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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85) 다윗의 뿌리요 자손 [계 22:16-1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7.28
지금까지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구원의 길과 멸망의 길을 기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고, 어찌해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지, 성 밖에 버려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보고 들은 대로 기록했지요.

주님께서는 요한만이 아니라 많은 사자들을 통해 교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때로는 천사들을 통해, 때로는 선지자들을 통해, 또 전도자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선포하셨지요. 이 시간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또한 저의 말이 아닙니다. 저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지요.

계 22:16 후반절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16절 후반절에서는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주님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먼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임하셨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지요. 그래야만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도’ 설교를 통해 구세주의 조건 네 가지를 들으셨지요. 이 네 가지 조건을 다 기억하십니까?

첫째 사람이라야 합니다.

둘째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의 후예는 모두가 원죄를 타고 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어야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사망의 권세를 파할 수가 있지요. 영적으로 힘은 죄가 없는 데서 나옵니다.

넷째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구세주가 되려면 죄인들을 대신해서 참혹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엄청난 사랑이 없으면 결코 이런 고난을 대신 받을 수가 없지요. 이 조건들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십자가의 도를 다시 들어 반드시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조건에서 구세주는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 했습니다.
고전 15:21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천사나 짐승은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죄는 영 혼 육을 입은 사람만이 대속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부모와 조상이 있게 되지요.
우리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마리아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정혼했기에 예수님의 육적인 계보는 다윗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계보에는 유다도 있고, 야곱, 이삭, 아브라함 등 많은 조상들이 있습니다. 맨 위에는 첫 사람 아담이 있구요.

그런데 왜 본문에서는 굳이 여러 사람 중에서도 “다윗의 후손”이라 표현하고 계신 것일까요? 이는 다윗의 이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서의 위엄과 명예,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왕의 위엄과 영광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다윗을 거론하는 것이지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첫 번째 왕입니다. 물론 다윗 이전에도 사울 왕이 있었지만 사울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원하여 세워진 왕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못하므로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우기를 원치 않으셨지만 백성들의 뜻대로 하도록 허락하셨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왕이 사울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뜻 가운데 왕이 되었다 해도 사울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행했다면 그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많은 악을 행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지요. 왕의 영광을 스스로 저버린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아브라함에게는 아들 이삭을 얻기 전에 이미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만을 믿음의 씨라 하셨고 이삭을 “독자”라고 부르셨지요.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씨가 아니라 사람의 방법으로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얻은 이삭만을 참 약속의 씨요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를 보아도 육적으로는 에서가 먼저 태어났지만 장자의 축복은 야곱이 받았습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릴 정도로 하나님의 복을 만홀히 여기는 망령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윗 이전에도 사울이 왕위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첫 번째 왕은 다윗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합한 다윗을 택하셔서 왕으로 세우시고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물론 다윗의 시대에는 전쟁이 있었고 나라를 안정시키기까지 많은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태평성대를 누렸던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의 영화보다는 못하게 보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솔로몬의 영화는 다윗이 쌓아놓은 업적을 기반으로 해서 얻은 것입니다. 또 믿음은 물론 왕으로서의 자질을 볼 때 영육 간에 다윗이 더욱 뛰어나지요. 그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시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셨습니다. “광명하다”는 것은 밝고 명랑한 것, 흠과 점이 없이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별은 때로는 사람을 뜻하지만 본문에서는 높은 것 혹은 왕을 뜻합니다. 별은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서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지요. 주님은 하늘에 속한 분이요 별처럼 높은 분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다윗의 계보를 통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원래 땅에 속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때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아직 죄인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그리스도 곧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요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더 이상 다윗의 자손이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 자체가 되십니다.

마 22:42-46에 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했지요.

바리새인들도 구약의 예언을 통해 그리스도가 다윗의 계보에서 나실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가 없지요. 오히려 다윗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런 영적인 의미를 알면 주님에 대해 말할 때도 ‘예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이런 표현들은 잘 구분해서 쓰게 됩니다.

구세주가 되신 주 예수님을 말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주님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표현하지요. 기도하거나 악한 영을 물리칠 때도 “주님의 이름으로”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거나 명하구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은 여러분이 구원의 영적인 원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그냥 막연하게 “주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 하는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주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는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고, 어떻게 구속의 사역을 다 이루셨는지 또 우리가 믿을 때 어떤 공의의 법에 의해 구원을 받는지, 이런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요.

이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백하며 기도하며 명합니다. 대충 막연하게 믿고, 막연하게 알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정확히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안에 담긴 힘이 다르지요.

새벽하늘에 맑고 깨끗하게 빛나는 새벽별은 우리 주님께 흠도 점도 없음을 나타내지요. 또한 새벽은 어둠이 물러가고 해가 뜨기 시작하는 때 곧 빛이 임하는 때입니다. 어둠의 권세, 곧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광명의 시작을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지요.

지금 왜 완전한 광명을 주셨다 하지 않고 광명의 시작을 주셨다 했을까요? 주님께서 부활하시므로 사망 권세를 파하셨지만 아직은 악한 영의 세력을 완전히 멸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7년 환난과 천년왕국이 지난 후 대심판 때입니다. 대심판 때가 되어야 원수 마귀 사단이 무저갱에 영원히 갇히게 되고 우리는 어둠이 전혀 없는 천국에 들어가지요. 온전한 광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적으로 이 땅에 오실 때도 왕으로서 가장 합당한 계보를 타고 나셨습니다. 또 영적으로도 새벽별처럼 높고 온전한 왕이시며 어둠의 권세를 파하여 우리에게 빛의 시작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내용을 다 종합하여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 22:17 전반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성령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요 16:7-8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하셨지요.

지금 무슨 말입니까? 이 말씀대로 주님을 대신해서 이 땅에 오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죄를 버리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지요. 그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만 하면 천국 중에서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이 오라” 하시는 것은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원하시는 성령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또 “신부”가 나오는데 계 21:9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신부”란 새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신부가 오라” 한다는 말은 새 예루살렘 성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을 말합니다.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지요.

천국의 꽃들에 대해 설명할 때 이 꽃들이 인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천국의 자녀들에게 반응을 한다 했습니다. 성도들을 보면 환영의 표시로 꽃잎을 더 활짝 펴기도 하고 더 진한 향을 발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처럼 새 예루살렘 성도 그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득 채워지기를 고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안에 하나라도 더 많은 자녀들이 들어오기를 고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입혀진 것이지요. 여러분이 그 자리를 부지런히 침노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온전히 순종만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23-07-28 오전 2:10:20 Posted
2023-07-29 오전 3:04:3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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