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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제목
천국 (22) 낙원 (2) [눅 23:4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0.12.27
오늘은 천국에서 각종 건물의 재료가 되는 보석의 종류와 색상은 어떠하며, 어떤 영혼에게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낙원 생명수 강가에 놓인 벤치의 재료

새 예루살렘 생명수 강가에 놓인 벤치는 황금 바탕 위에 각종 보석으로 꾸며졌는데, 낙원의 생명수 강가에 놓인 벤치는 “이 땅의 대리석 같은 보석”을 깎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땅에서는 대리석도 값이 나가긴 하지만 돌의 일종일 뿐 보석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천국에는 돌, 흙, 시멘트, 나무 같은 재료가 없고 오직 금, 은, 보석만을 재료로 이용합니다. 따라서 낙원의 벤치를 만드는 재료가 이 땅의 대리석과 비슷해 보인다 해도 실상은 돌이 아니라 보석의 일종입니다. 그렇다고 낙원에는 대리석 같은 벤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에도 황금 바탕에 보석이 장식된 벤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털을 깎아 보석으로 장식한 벤치도 있습니다.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빛을 내는 크리스털 벤치는 황금 보석으로 된 벤치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하지요.
낙원에도 투명한 보석으로 만든 벤치가 있지만 새 예루살렘의 것처럼 크리스털 벤치는 아니며, 이 땅의 “유리”에 비유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벤치입니다.


2. 천국에서 각종 건물의 재료가 되는 보석의 종류와 색상

이 땅에 투명한 빛을 내는 것으로는 다이아몬드, 크리스털, 큐빅, 유리, 또 얼음도 있지만 각각에서 나오는 빛과 가치가 다릅니다. 천국에서도 집뿐만 아니라 각종 시설물을 만드는 재료들은 금, 은, 보석인데, 각각의 처소마다 그 빛깔과 색상과 가치가 다르며, 종류의 다양함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새 예루살렘의 성벽이나 집의 벽면은 “벽옥”으로 돼 있어 안에서는 밖이 보이나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있는 “벽옥”이 진정한 보석으로서의 벽옥이라면 낮은 처소로 갈수록 진품보다 못한 벽옥으로 각종 건물이 지어집니다. 그래서 낙원의 건물도 안에서 밖이 보이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기능을 하는 재료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 가치는 새 예루살렘의 벽옥과는 전혀 다르지요. 천국에는 돌, 흙, 시멘트가 없기에 낙원의 건축물을 만든 재료도 보석의 일종이긴 하지만, 진품 보석은 새 예루살렘에 있으며 낙원의 보석은 빛깔과 색상, 가치가 다른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붉은빛을 내는 보석을 본다면 그것은 진품 “홍보석”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의 다른 처소에도 붉은빛을 내는 보석이 있을까요?
3천층, 2천층, 1천층뿐만 아니라, 낙원에도 붉은빛을 내는 보석이 있으나 새 예루살렘 외의 다른 처소에 있는 붉은빛 보석을 “홍보석”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홍보석은 새 예루살렘에 있고, 다른 처소에 있는 붉은빛 보석들은 천국의 보석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천국 모든 처소의 길은 황금길인데, 이 땅에서도 금의 순도에 따라서 그 빛과 가치가 다른 것처럼 천국의 각 처소마다 금의 빛과 가치가 다릅니다. 새 예루살렘의 길이 진짜 황금으로 된 길이라면 낙원의 길은 새 예루살렘의 황금과는 다르지요.
녹보석, 남보석 등 천국의 모든 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도 진품이 있는가 하면, 진품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치 있는 것이 있고, 진품을 흉내 낸 모조품도 있습니다. 천국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보석, 곧 “진품 보석”은 새 예루살렘에 있고 다른 처소의 보석들은 가치가 덜하며, 빛깔도 차이가 납니다.
각종 보석의 “색상”의 다양함도 천국 각 처소마다 차이가 납니다. 높은 차원의 처소일수록 종류가 다양하지요. 새 예루살렘에는 있지만 낙원에는 없는 색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붉은빛 중에는 빨간색에 가깝거나 주황색, 분홍색에 가까운 빛도 있을 수 있고, 그 밖에 색의 농도에 따라 진하기도 하고 엷기도 하는 등 매우 다양하지요. 노랑, 파랑, 초록 등 다른 색상들도 마찬가지이며, 한 가지 색깔이 있으면 그 원색뿐만 아니라 농도와 배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색상이 파생되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능한 모든 색상이 존재하며, 보석에서 2중, 3중의 빛이 나는 곳이 새 예루살렘이라면 낮은 처소로 갈수록 원색에서 파생돼 나오는 색상의 종류가 적습니다. 낮은 처소로 갈수록 색상이 단순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처소마다 건축물과 시설물의 색상도 많은 차이가 나고, 건축물의 재료가 되는 보석의 색상의 종류가 다르니 그것으로 만들어진 결과물도 차이가 납니다.
천국에는 꽃들의 색상도 처소에 따라 종류가 다릅니다. 그래서 낙원에 있는 영혼이 새 예루살렘에 초대받아 집이나 정원을 돌아보면 황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의 크기나 모양 때문이기도 하지만 낙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상이 새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있는 보석과 꽃의 색상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며 이 땅에 없는 색상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전경을 그림이나 모형으로 표현하고자 해도 이 땅에서는 한계가 있지요.


3. 천국에도 애완견이 있을까?

이 땅의 어떤 짐승도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전도서 3장 21절에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하신 대로 짐승은 영이 없으므로 죽으면 혼이 흩어져 그것으로 끝입니다. 천국에서 애완동물이 주어지는 경우는 새 예루살렘의 영혼들에게 한해서입니다. 그것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모든 영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서 주어지는 애완동물 중에 이 땅의 개와 같은 동물도 있을까요? 성경에는 개가 좋지 않은 비유로 쓰였으므로(벧후 2:22) 새 예루살렘에 개는 없고, 애완동물로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개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유는 주인을 알아보고, 비교적 잘 순종하며 따르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애완용으로 주어진 동물은 이 땅의 개와는 다른 형상의 동물이지만, 개보다 훨씬 사랑스러우면서 또한 그 속성을 지녀서 주인을 기쁘고 즐겁게 해 줍니다. 천국에는, 특히 새 예루살렘에는 이 땅에 없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있는데, 훨씬 더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멋집니다.


4.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경우

낙원은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천국 처소입니다. 표면적으로 같은 믿음의 1단계라 해도 죽기 직전에 믿음의 1단계가 된 경우가 있고,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는데 신앙의 발전 없이 믿음의 1단계에 머문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 3단계였던 사람이 시험에 들어 믿음의 1단계로 떨어진 경우 또는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이나 현저한 육체의 일과 같은 “사함 받지 못할 죄”를 지어 구원받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용서와 긍휼을 입어 가까스로 구원의 문턱에 이른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낙원이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이지만 그곳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다른 어느 처소 못지않게 크지요. 낙원에 들어가는 영혼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믿지 않은 세월이 더 길었거나,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떠한 행함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서운 지옥 형벌을 면케 하시고 평안하고 행복한 천국이란 공간에 들여 영원히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을 알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주셨으니, 이들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크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경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죽음 직전에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경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의 좌우로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 중 한 명이 이에 해당됩니다(눅 23:39~43).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으나 다른 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지요. 회개한 강도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며 구원받았음을 알려 주십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뿐 죄악을 싸워 버린 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우쳐서 행할 시간도 없었지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수고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예비된 천국이 낙원입니다.
그렇다고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해도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만일 회개한 강도에게 이후 신앙생활 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결국은 구원받아 천국에 이를 수 있는 중심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가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믿음이 순식간에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언제 죽을지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므로 회개한 강도처럼 죽음 직전에 구원받기는 쉽지 않지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대로 한다면 이들은 구원받을 조건에 심히 미달되므로 추수 때 쭉정이를 미련없이 버리듯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죽기 직전에라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시지요.
물론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대개 가족들이 그 영혼을 위해 지극한 사랑의 기도를 쌓고 하나님 앞에 믿음의 심음도 있었던 경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랑의 기도로 소돔성에서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던 것처럼, 영적인 끈으로 연결된 가족들의 사랑의 중보 기도와 믿음의 심음 등이 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구원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에 이러한 영적인 원리를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2020-12-30 오후 5:00:11 Posted
2021-01-03 오전 11:22:4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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