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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제목
천국 (32) 새 예루살렘 (1) [계 21: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03.07
오늘부터는 천국 처소 중에 가장 영화롭고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천국은 이 땅의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중에서 3천층 중앙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과연 어떤 곳일까요?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했습니다. 구원의 문을 열고 낙원을 지나 1천층, 2천층, 3천층의 문을 열고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려면

1) 가장 좋은 천국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특별히 뽑은 누구누구만 오라 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원하시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영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잉태와 출생 그리고 성장 과정도 지켜보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던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분이지요. 이처럼 우리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좋은 천국에 이끄시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천국에서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분도 하나님과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온 영을 이뤄 새 예루살렘에 당당히 들어가면, 하나님과 주님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자녀가 성공하면 부모도 자신의 성공보다 더 기뻐합니다. 스승도 제자가 훌륭한 업적을 남기면 가르친 보람을 느끼지요. 영으로 영혼을 양육하는 목자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말씀합니다. 즉 복음으로 낳은 영혼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양육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에는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으로 품은 영혼들이 잘되는 것이 사도 바울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하며 사랑으로 섬기면서 기도하신 분들은 사도 바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한 영혼이 교회에 처음 나올 때에 전도자가 느끼는 기쁨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이 성장하여 일꾼이 되면 그 자체만 봐도 뿌듯하지요. 한 영혼을 전도해도 이러한데 목회를 해온 마음은 어떨까요?
저는 세계 선교와 민족복음화의 사명을 받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방송과 문서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는 차원을 넘어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사명도 주셨지요. 이를 위해 끊임없이 성결의 복음을 외치며 사도 바울처럼 해산의 수고를 해왔습니다.
부모가 한 자녀를 양육해도 갖은 수고와 헌신이 따릅니다. 하물며 수많은 영혼을 영으로 양육할 때에는 어떠하겠습니까. 마음 아픈 일들도 많이 있었지요. 오직 ‘한 명이라도 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주님께서는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모두가 해처럼 빛나는 영혼이 되어 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영적 사모함으로 새 예루살렘을 침노해야
주 안에서 연단을 받다 보면 자신이 아주 작게 보이거나 자신감을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지레 낙심하고 포기하기도 하지요.
이때 생각을 바꿔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를 위해 온전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믿음으로 꼭 새 예루살렘까지 침노해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사모함이 너무 앞선 나머지 욕심 가운데 영광만 구하다가 자칫 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데 자격이 되지 않아 얻을 수 없을 때 크게 좌절하고 낙심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 가운데 정확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육을 벗고 영으로 채운 만큼 영적인 빛이 입히고 천국의 영광 가운데 거합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목표는 새 예루살렘이지만, 현재 1천층에 갈 믿음이라면 우선 2천층을 목표 삼아 기도하며, 2천층에 갈 믿음이라면 3천층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지요. 이렇게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결코 욕심으로 천국의 영광,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얻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버지께 큰 기쁨을 드리리라. 인생들을 경작하며 숱한 세월을 인내하신 하나님께 뿌듯한 보람을 드리리라.’ 하는 마음으로 천국을 예비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영적 사모함으로 침노해야 하겠습니다.


2.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는 면류관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는 어떤 영혼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자격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영혼들에게 주는 면류관의 영적인 의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최고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면 선수로서의 가장 큰 영광을 누리며,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새 예루살렘 성에서 받는 면류관은 최고의 영광이 되며, 동시에 이 성에 들어올 수 있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증거가 됩니다.
1천층, 2천층, 3천층에서는 면류관을 기본으로 한 개씩 주는데, 새 예루살렘에 들어온 영혼들에게는 기본으로 두 개의 면류관을 줍니다. ‘기본적으로 주는 면류관’이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온 모든 영혼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또한 특별한 날뿐 아니라 평상시에 쓴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새 예루살렘에서 기본으로 받는 두 가지 면류관은 ‘금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에 담긴 영적 의미가 바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에 대한 상급으로 주는 금 면류관
요한계시록 4장 4절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보좌 주변에 24장로가 금 면류관을 쓰고 둘러앉은 장면입니다.
24장로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온 영혼들 중에서도 믿음, 소망, 사랑, 충성, 선, 진실, 절개 등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신앙의 분야를 가진 분을 말합니다. 이러한 24장로가 금 면류관을 쓴 것으로 보아 금 면류관은 새 예루살렘에서 주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금 면류관은 24장로뿐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모든 영혼에게 주어집니다. 정금으로 된 관 위에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형태이며 남성용은 관의 벼슬 부분이 조금 뾰족한 느낌이고, 여성용은 좀 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룹니다. 면류관의 바탕 위에 장식된 주된 보석은 사람에 따라서 크기와 장식이 다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온 영혼들에게 왜 이 금 면류관을 주시는 것일까요?
금은 불순물이 전혀 없는 정금으로서 영원히 변함없는 참 믿음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온 영혼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분량에 이른 상급으로 금 면류관을 주시지요. 이는 역으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야 함을 뜻합니다.

2) 온 영을 이루어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는 의의 면류관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했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진실로 사모하는 사람은 첫째, 사도 바울처럼 흠과 점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합니다. 먹으나 입으나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며,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함으로 합당한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역경과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삽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자신이 할 바를 다 한 사람만이 주의 나타나심을 진실로 사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돌아보아 민망하고 부족할 때에는 주님이 아무리 뵙고 싶어도 담대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주님을 만나게 될 때의 흐름을 영으로 깨닫습니다. 내주하신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하고 준비케 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순교할 때가 이르자 주관을 받아 그 길을 기쁘게 갔습니다.
진실로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한다면 성령께서는 신부 단장을 온전히 마칠 수 있도록 주관하실 것입니다. 거룩하고 온전하신 주님의 신부로서 조금도 손색없이 준비한 사람은 주의 나타나심만을 손꼽아 기다리지요.
이처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상급으로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요한계시록 21장 2절을 보면, 새 예루살렘에 대해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새 예루살렘을 천국의 어떤 처소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공간으로 예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곳까지 힘차게 침노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03-10 오전 11:13:24 Posted
2021-03-12 오전 9:50:3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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