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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

제목
사랑장(2)  [고전 13: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9.01.09
사랑장 두 번째 말씀을 증거합니다.

요즘 주일 대예배에는 천국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말씀들을 통해 여러분은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며 천국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왜 그토록 아름답고 행복할까요? 바로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국을 만드신 이유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함이요, 천국의 모든 것도 자녀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시기 위해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국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바로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천국에 갈 때는 영으로 이룬 마음만 가지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영으로 이룬 마음이란, 곧 영적인 사랑을 이룬 마음이지요. 그래서 천국은 마음에 참사랑을 이룬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른 처소로 들어가게 되므로 각 처소마다 사랑의 크기나 농도도 다르다 했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열심히 충성했다 해도 그 마음에 얼마나 사랑이 임해 있느냐에 따라 받는 상도 전혀 달라지지요.

오늘 이 시간부터는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생활의 종착지인 천국의 본질이 사랑인 것처럼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사랑이며 사랑이 첫째임을 깨달아 여러분의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며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 이를 때 최고의 처소에서 주님과 최고의 사랑을 나누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3:1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말씀합니다. 먼저 여기 나오는 ‘사람의 방언’이란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온 인류, 우리 사람들이 하는 말, 언어를 총칭해서 사람의 방언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시간, 단에서 증거 되는 이 사랑장 말씀은 본 교회에서만도 영어, 일어, 불어, 러시아어 등 7개 국어로 통역이 되어 전 세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언어들을 총칭하여 ‘사람의 방언’이라 하는 것이지요.

말의 힘은 참으로 큽니다. 여러분은 이 말의 힘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요즘은 사회 전반적으로 이 말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교나 취업 등의 사회활동을 위해 화술(話術), 곧 말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히려고 개인 교습까지 받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이나 학교에서 사람을 뽑을 때도 구술(口述) 면접시험, 곧 말로 보는 시험을 실시하는데 말을 잘하는 것이 곧 실력으로 인정되지요. 이는 말을 잘하는 능력이 많은 분야에 있어서 유익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여 무수한 사람을 설득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요. 또한 인간의 문명이나 지식은 이 언어에 의해 체계화되고 전수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들어있지요.

한 예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방송에서 뉴스나 오락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많은 사람들의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들은 아주 명료하고 유창하게 말을 잘해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뿐 아니라 감동을 주거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유창한 사람의 말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의미 없이 시끄럽게 울리는 구리나 꽹과리 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천사의 말’이란 매우 아름다운 말을 의미합니다. 천사는 주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나 주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에게나 아름다움의 표상(表象)이지요. 그래서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이나 곱게 단장한 사람을 ‘천사 같다’ 말하기도 합니다. 또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도 ‘천사 같이 말한다’ 하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영안이 열려 천사를 보신 분들이 많은데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서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천사들은 각기 맡은 사명과 역할에 따라 외모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곱고 하얀 피부와 금빛 나는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황홀합니다. 입고 있는 옷도 눈부실 정도로 새하얗고 깨끗하며 잠자리 날개 같은 얇은 옷자락은 반짝반짝 빛나고 천사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지요.

이처럼 아름다운 천사는 그 입의 말도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 말씨가 너무나 곱고 상냥하며 그 목소리는 맑고 청아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아름답고 빼어나 감동을 주는 목소리나 음악을 천상의 소리라 일컫기도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천사의 말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말씀하십니다.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소리는 어떻습니까? 묵직한 구리는 때려도 소리가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속이 빈 구리를 때리면 소리가 나지요.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고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꽹과리는 얇은 놋 등의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로, 때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꽹과리를 치면 매우 높고 큰 소리를 낼 뿐 아니라 이 소리가 제법 멀리까지 울려 퍼지지요. 만약 여러분이 밤에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누군가가 집밖에서 이 꽹과리를 두드리고 있다면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 그 꽹과리의 요란한 소리에 잠이 다 달아나겠지요. 묵직한 쇠나 구리는 두드려도 이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구리나 꽹과리가 아름답지 않은 소리를 내는 이유는 그 속이 비었거나 가볍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마치 빈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아직 실한 열매를 맺지 못한 벼일수록 그 고개를 뻣뻣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수레는 짐을 가득 실어 나를 때 가치 있고, 벼는 실한 알곡을 많이 맺어 고개를 숙일 때 농부의 기쁨이 됩니다.

이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사랑이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을 닮은 참 아들, 딸이 될 때라야 인간을 경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지요. 반대로 그 마음에 사랑이 없는 사람은 쭉정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쭉정이와 같은 사람이란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혼과 육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육의 사람입니다. 원래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 지음 받은 영의 사람이었지만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함으로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그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음으로써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끊어지고 대신 혼이 주인이 되어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죄로 인해 자신에게 속하게 된 인생들에게 이 혼을 통해 비진리를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혼의 지배를 받는 육의 사람들은 그저 본능을 위해 살아가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지요. 그러니 농부가 불필요한 쭉정이를 불에 사르는 것처럼, 영이 죽어 혼과 육만 있는 육의 사람도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7-8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므로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알맹이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사람의 말은 그 말이 아무리 유창하고 아름다워도 사람에게 참 기쁨과 생명을 줄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볍고 그 속이 비어 있어서 탁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리나 꽹과리처럼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불쾌함을 주기도 하지요.

우리는 매일매일 참으로 많은 말들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하루하루 어떤 말을 하고 계신지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같은 말을 해서 상대의 마음에 아픔을 주거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으십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주님께나 사람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아름다운 말만 하시겠지요?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되셔야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의 말에는 참으로 큰 힘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사랑이 담긴 말은 생명을 살리기까지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지요. 인류의 역사 속에는 오직 그런 말만을 하며 일생을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말은 여러 권의 책으로 기록되었고 그 책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지요.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책은 바로 성경이지요.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서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들은 기록으로 남아 2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무수한 영혼들을 살리며 변화시키고 있지요. 우리 주님의 말씀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책이 바로 성경인데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가장 많이 보급된 책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들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경까지 기록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절차와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책으로 엮어졌습니다. 성경의 말씀들은 지금까지 약 200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보급되었고 지금도 다양한 언어로의 번역 작업이 진행 중이며 18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만 해도 약 60억 권 이상이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이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스테디셀러’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아무리 무수한 세월이 흘렀어도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다 보면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인생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이 동일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주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안에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느끼게 해 주는 사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아침,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때 몇몇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이렇게 말했지요.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전에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공통적인 죄목들을 쓰셨다 했지요. 다 쓰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9절에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한 대로 그 여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곳에서 떠나갔지요. 예수님은 간음하여 잡혀온 그 여자에게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물으십니다. 이에 여자가 “주여 없나이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셨지요.

간음하여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 여자를 향해 던져진 말 중에 참된 생명을 준 말은 누구의 말이었습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 곧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말하며 그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의중을 묻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고 있으니 이들의 말이 그른 말은 아니지요. 율법이 의의 기준이었던 당시로서는 지극히 바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율법학자를 비롯한 유대의 지도자들은 랍비, 곧 선생이라 칭함을 받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 여러 가지 지혜로운 말들을 가르쳤지요. 그러면 이들이 평소에 어떤 말을 했겠는지요? 당시 서기관이요 바리새인이라면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 아무 흠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말했고 의롭고 경건한 말씀들을 가르쳤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이나 배경이나 학식이나, 자신들보다 못하게 보이는 예수라는 한 사람이 나타나 말씀을 가르칩니다. 날이 갈수록 백성들이 예수라는 사람을 자신들보다 더 인정하고 사랑하자 이들의 마음에는 시기가 일어났고 위기감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이전에 선한 말만을 전하던 모습이 돌변하여 ‘어떻게 하면 저 예수를 정죄할까? 어찌하면 자신들이 다시 백성의 인정을 받을까?’ 하는 악한 모습이 나오더라는 것이지요.

지금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어떤 자비나 긍휼의 마음도 찾아볼 수가 없지요. 다만 어찌하든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잡고자 이 여자와 모세의 율법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의 율법에 정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해도 그 말은 결코 선한 말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아무리 죄 없이 송사를 받으시고 정죄를 당하셔도 그 마음이 오직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는 오직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여인을 구원하려는 마음뿐이었지요. 이 여인을 둘러싼 무리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신 것도 결코 영혼들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 그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셨다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죄목을 일일이 말씀하시며 “너희도 이런 죄를 짓지 않았느냐?” 지적하시고 책망하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리하지 않으셨지요. 단지 그 죄들을 조용히 땅에 쓰심으로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죄를 깨달아 돌이킬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심으로써 인생들이 율법의 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고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이나 무리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나 짧은 몇 마디 말에 불과하지만 그 말에 담긴 의도나 마음은 너무도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의 마음은 어찌하든 상대를 해하려는 마음이었고, 한편의 마음은 어찌하든 모두를 살리려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마음을 이루는 과정에 있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 말씀들 중에는 선과 악에 대한 말씀, 죄와 의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있지요. 성도들은 이 말씀을 자신에게 비춰보아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신앙의 연륜도 쌓이고 직분을 받게 되면서 이 말씀으로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지요. 상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려는 마음에서, 또 자기편에서는 형제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면이나 지적의 말을 한다고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상대를 오히려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이지요.

비록 어떤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해도 자신의 마음 안에 온전한 사랑이 임해 있지 않는 한, 상대에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 자신의 의와 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상대를 찌르는 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처음에는 선한 의도로 상대를 깨우쳐 주려고 했는데 거듭 말해 주어도 상대가 변화되지 않는 것 같으면 처음의 선한 의도는 점점 흐려지고 답답해하는 마음에서 점점 더 강한 표현으로 말하기도 하지요. 권면하는 말에 감정이 실리기도 하고요. 주님의 마음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라도 살리기를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이런 주님의 마음을 품는다면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할까?’ ‘어떻게 하면 은혜를 받게 해서 진리로 나오게 할까?’ 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지혜를 궁구하게 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를 무조건 설득하려고만 하기도 합니다. 상대를 지적하고 깨우쳐 줘서 어찌하든 자신이 보기에 거슬리는 부분을 고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내가 늘 진리의 말만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의 의와 틀 가운데 말하고 있는지 돌아보실 수 있기 바랍니다.

또한 표현은 진리의 말이요 천사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해도 그 말이 정녕 생명을 살리려는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끊임없이 이렇게 점검하며 노력해 나가는 분이라면 결국 사랑의 주님과 같이 그 입술의 말에 영혼을 살리는 권세와 능력이 실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천사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4에 보면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천사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존재로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사의 말이 아름다울지라도 백 마디의 천사의 말보다 인간 경작을 받아 그 마음에 참사랑을 이룬 자녀들의 말 한 마디를 더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시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잠언 10:20에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말씀한 것을 기억하셔서 그 어떤 유창한 말이나 천사의 말을 하는 것보다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을 더욱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목마른 영혼에게는 시원함을 주고 아파하는 영혼에게는 기쁨과 위로를 주는 생명의 물이요 값진 보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02-28 오후 3:37:34 Posted
2023-04-18 오후 4:15:1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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