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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욥기 강해 (12) 영적인 소경의 모순됨 [욥 6:5-15]
설교자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2.05.08
오늘은 욥의 교만과 영적인 무지, 그리고 이로 인한 영적인 소경 된 모습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연단은 축복의 지름길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욥 6:5)
들나귀나 소가 먹을 꼴이 없기 때문에 우는 것처럼 욥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울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데다 온몸의 악창으로 인해 너무나 참기 힘든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하소연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욥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원망과 탄식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진리에 비추어 볼 때는 전혀 옳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연단을 감사와 기쁨, 기도로 승리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롬 5:3~4). 인내의 과정 속에 영혼이 성숙하게 단련되며, 그럴수록 천국 소망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연단하여 육을 벗고 영으로 나오게 하십니다(잠 17:3). 연단의 과정이 비록 당시에는 고통스럽다 해도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만 정금과 같이 아름다운 영의 마음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으로 변화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기 때문에 연단은 축복이며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이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시험은 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시험이 와도 막을 길이 없고,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능히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약 1:2~4)
그런데 믿음이 있는 성도 중에도 시험이 왔을 때 이에 반응하는 모습이 다양합니다. 얼마쯤 인내해 보다가 “너무 힘드니 그만 포기하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내하는 척, 진리 안에 사는 척하다가 그만 범죄하고 마는 사람 등 여러 유형이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합격할 때까지, 인정받을 때까지 인내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와 절제가 필요합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성결되었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오는 시험들을 참고, 이기고 또 이겨야 합니다. 이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 나가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온다 해도 믿음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살전 5:16~18). 죄로 인해 환난이 왔다 해도 이를 통하여 자신을 발견케 해주시니 감사하고, 그래서 죄를 버리고 의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범죄한 것이 없는데도 시험이 왔다면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니 더욱 감사할 수 있지요.
그러니 어떤 시험이 왔을 때라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지 말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감사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2. 욥의 교만과 영적인 무지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같이 여김이니라”(욥 6:6~7)
욥은 소금을 넣지 않은 음식과 달걀의 흰자위가 맛이 없는 것처럼 친구 엘리바스의 말은 맛이 없어 먹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알맹이도 없고 값어치도 없는 말이라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며 비꼬는 것이지요.
엘리바스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욥을 가르쳤지만 욥은 그 말이 맛없는 음식물처럼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고 못된 식물같이 여긴다” 했는데, 이는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라는 교만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욥은 교만하여 마음 문을 꽁꽁 닫고 있었기에 친구가 아무리 진리로 권면한다 한들 이를 받아들여 깨우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과 학문이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니요, 자칫 교만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일구지 않고 지식으로 쌓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진리를 참으로 아는 사람이었다면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히 낮아졌을 것이니 친구와 감정 대립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했으며 하나님을 안다고 했지만 정작 영적인 무지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의 깊은 학문이 자기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영적으로는 소경과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엘리바스도 교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옳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상대가 거부하면 전하지 말아야 하는데, 엘리바스는 교만하기 때문에 욥을 무시하며, 욥이 마음 문을 닫은 것도 알지 못한 채 계속하여 욥을 타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욥 6:8~9)
여기서 욥이 구하고 사모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지요. “하나님, 내 생명을 거두어 가세요.”라고 기도하며 응답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는다면 결코 이러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땅에 경작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혹 자녀를 저버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사 49:15),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 편에서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애틋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목숨까지 내어 주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겪는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잘 승리하여 참 자녀로 나올 수 있도록 늘 응원하시며 돕고 계시지요. 그리하여 아름다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 거둬 주시기를 구하고 있으니 얼마나 합당치 못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믿음 없는 말이며 하나님을 서운하게 하는 말인지 욥은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진리를 올바로 알지 못하였으며 내세의 소망이 없었으므로 하나님 앞에 불평하여 하나님을 서운케 하였던 것입니다.


3. 영적인 소경 된 모습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욥 6:10)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거둬 가실지라도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생명을 거둬 달라고 구하는 자체가 이미 말씀에 어긋나는 비진리인데, 욥은 스스로 말씀 안에 살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욥은 전능자 하나님은 자신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고 무정하게 고통만 안겨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능자가 혹독한 매를 가했지만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지 않았다, 즉 진리 안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옳다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진리 안에 살았으니 하나님이 내 생명을 거둬 가신다고 해도 아무 여한이 없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우치지 못하면 자신이 잘못했어도 잘못인 줄 알지 못하고, 잘했어도 잘한 줄을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영적인 소경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4. 영적인 믿음의 중요성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욥 6:11~12)
욥은 이제 자신은 회생 불가능하며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전능자가 자신을 치료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지쳤고, 돌이나 쇠처럼 단단한 기력이 아니니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부정적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 없는 사람의 한계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또 우리 교회 김은득 권사님은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당회장님의 기도로 후유증 하나 없이 빠른 시간에 치료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렸지요. 이 경우는 욥의 악창보다 더 참혹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욥의 악창은 그래도 세포가 살아 있는 경우라 할 수 있지만 김은득 권사님은 세포까지 익어 버린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믿음을 내보이면 죽은 자도 살아나고, 죽은 세포도 살아납니다.
욥은 영적인 믿음이 없었기에 부정적인 고백만 이어지는데. 이러한 욥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충만할 때는 “믿습니다” 고백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사명 감당하며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시험이 오면 이제까지 쌓아온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 드러나지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한번 믿고 구했으면 응답받을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번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며 더욱 진리로 마음을 강하게 하여 천국에 갈 때까지 변개함 없는 믿음으로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22-05-11 오후 2:55:56 Posted
2022-05-13 오후 1:53:1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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