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난 지혜’의 항목 중에서 오늘은 성결에 이어서 화평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기 위한 첫 번째 비결 - 성결
지난 시간에는 위로부터 난 지혜의 첫 번째 비결인 ‘성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를 초월하며 세상의 지혜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선한 방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도 깨달은 대로 선을 행하기 위해서도 먼저 마음에 성결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선한 지혜가 떠오르지도 않고, 선을 행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용모도 아름다웠고 지혜도 뛰어났지만 그 지혜를 악한 데 사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복형인 암논에 대한 원한이, 아버지 다윗 왕에게도 불만이 되어 반역을 도모합니다. 그 과정을 보면 대단히 치밀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백성들을 포섭해 갔지요. 그리고 마침내 다윗 왕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치밀하게 반역을 계획하였어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역사하시니 압살롬의 지혜를 어둡게 하셨습니다. 압살롬에게 유리했던 모사 이히도벨의 작전도 듣지 않았고, 다윗에게 유리한 의견을 따랐지요. 그토록 머리가 좋은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판단력을 흐리시니 순간에 멸망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요.
그가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명철을 가졌다 해도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되었습니까? 그 지혜로 형을 죽이고 자기 아버지를 대적하며, 하나님까지 대적하므로 결국 멸망으로 갔지요. 성결이 없는 지혜란 이렇게 헛된 것입니다. 그러니 신속히 성결을 이루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기 위한 두 번째 비결 - 화평
1) 타인과 화평
영적인 화평은 모든 사람과의 화평입니다. 어떤 사람과는 잘 지내고 어떤 사람과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넉넉한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과 화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화평한 것이 지혜라고 하는 이유는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두뇌와 능력을 가졌지만 화평을 이루지 못해 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한 예로 조선시대의 조광조라는 인물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왕과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낡은 정치의 폐단을 없애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 정책을 실행하려 했습니다. 왕은 소신이 뚜렷하고 열정이 있는 그를 힘껏 밀어주었고, 백성들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조광조는 너무 급진적으로 일을 추진하여 다른 신하들의 반발과 미움을 샀고, 반발 속에서도 자기 의견만 강하게 주장하다가 점차 왕의 감정까지 상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모함을 받아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덕스럽게 주변을 포용했다면, 자신의 꿈을 펼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옳은 것만 주장하여 화평을 이루지 못하면서, 오히려 큰 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해도, 또 나름대로 지식과 확실한 방법론이 있다 해도 결국 그것이 쓸모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공을 많이 세우고도 주변 사람에게서 좋은 평을 듣지 못합니다. 독불장군처럼 자신의 능력과 지혜만 앞세워,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형편은 무시하고, 자기 고집과 스타일대로만 밀고 나갑니다. 아랫사람들과도,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도, 심지어는 상사들과도 부딪힙니다. 이런 일이 계속 쌓이게 되면, 이 사람은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그의 능력까지 무시됩니다. 회사 안에서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열매를 내었다 해도, 화평을 깨면서 그랬다면 결과적으로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화평
더구나 하나님의 일에서는 화평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좋은 것을 이룬다 해도 그 과정에서 화평이 깨어지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똑똑하고 기술과 재능이 뛰어나도, 화평을 깨는 사람은 쓰임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부모를 사랑하여 온갖 좋은 것으로 섬기고 공경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고 다툰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부모의 마음은 상하기 마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일을 잘 하는 것보다 화평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화평이 지혜라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불화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을 계획하고 직접 뛰는 것은 일꾼들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일하는 과정에서 화평이 깨지면, 사단 마귀에게 송사거리를 내어주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길이 막힙니다. 이럴 때는 사람이 아무리 지혜를 동원하고 열심히 일해도, 영적으로는 실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육적으로 재능도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열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일을 맡기면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것이 더 좋다” “이렇게 해야 더 열매가 난다” 하면서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물론 본인은 잘하기 위해서 그런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주변에서 “저 사람과는 일하기 힘들다”는 불만이 나오게 됩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그 영혼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 사명이라도 맡겨서 힘을 내어 신앙생활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입으로 불평을 쏟는다면 상급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쌓은 상급마저 없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화평을 이루는 것이 큰 지혜입니다.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하나 되고 화평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시고 열매를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신앙생활에서의 화평
신앙생활을 할 때도 화평하는 지혜는 아주 중요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핍박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화평의 지혜를 발휘하면, 핍박이 떠나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불필요한 연단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경우도 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여성도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남편이 “일요일마다 당신이 나만 두고 나가는데도 내가 계속 양보했으니까, 이번 일요일은 교회에 가지 말고 나와 함께 집에 있으면 좋겠다.” 합니다. 이럴 때 어떤 아내는 ‘또 남편이 억지를 쓰는구나.’ 하고 한숨을 쉽니다. 그러면서 “주일은 교회 가야하는 걸 알면서 왜 또 괜히 그러세요? 혼자 있기 싫으면 같이 교회 가면 되잖아요.” 하면서 나가 버립니다. ‘나는 당연히 교회를 가야 하니까,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남편의 투정을 받아줄 수 없다.’는 태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남편을 서운하게 하면서 가정복음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주일 예배는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아내라면 남편과 최대한 화평하면서 주일을 지킬 것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도 하고, 집 안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상냥하게 남편의 기분을 맞춰줍니다. 주일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러면 더욱 좋습니다. 그리고 나갈 시간이 되면, “당신이 항상 양보해 주니 너무 감사해요. 저도 같이 있고 싶지만, 그래도 주일은 꼭 예배를 드려야 해요. 토요일과 휴일에는 꼭 같이 있을게요. 오늘은 혼자 있게 해서 너무 죄송해요. 금방 다녀올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최대한 온유하고 사랑스럽게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정말 남편을 사랑하고 화평을 이루고자 하면, 성령께서 그 순간 가장 적절한 화평의 말을 주관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 속에 화평과 선으로 쌓아나갈 때, 가정의 복음화도 빨리 이뤄지게 됩니다. 남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후자를 더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이 혈기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윽박지릅니다. “하나님을 택하든지 나를 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아내가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지’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지금 원수 마귀 사단이 당신을 주관하는 거예요. 계속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면 지옥 가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한다거나 “당신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결코 하나님을 버릴 수 없어요.” 한다면, 이는 불난 곳에 물을 붓는다 하면서 기름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핍박이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과 상대에 따라, 어떤 말로 대답할 것인지는 달라집니다. 성령의 주관이 강하게 올 때는 아내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남편이 변화될 때도 있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유순한 말로 남편의 분노를 달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잠언 15장 1절에도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제가 당신을 잘 섬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서운하셨던 것이 있으면 제가 앞으로 더 잘할게요. 우리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같이 천국에 가요.” 하면서 간곡하게 말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하지만 말만 부드럽게 잘한다고 해서 남편의 마음이 녹아지고 화평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정말 남편을 사랑하고, 화평하기 원하는 마음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혈기를 내니 나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나를 핍박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고 밉다면 화평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려니, 선하고 지혜로운 말이 잘 떠오르지 않고 남편의 마음에도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선으로 변화되어야, 악을 발하는 상대에게도 선으로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평한다’ 하면서 비진리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핍박하는 남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늘 하루는 주일을 어겨야겠다’ 한다면, 이것은 화평이 아니라 타협입니다. 육적인 화평을 좇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자칫하면 사망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평’에 있어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사람과의 화평이 아닌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과도, 모든 사람과도 범사에 화평을 이루어 날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07-09 오후 1:38:43 Posted
2026-07-17 오후 11:22:33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