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의 3가지 특징 중에서 지난 시간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양순의 특징 3가지
1)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로 분별하여 요동하지 않게 하는 것
‘양순’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말과 행함의 선한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양순의 특징 첫 번째,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해주며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로 분별하여 요동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다 했습니다.
2) 자족하는 것
빌립보서 4장 11-13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양순의 마음이 이뤄지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당면한 어려움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획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상황이 어려울 때 불편한 기색을 심하게 드러냅니다. 초조해하고, 안색이 변하며 주변 사람까지 불안하게 하지요.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남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도 없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까지 잃게 됩니다. 반면, 양순한 마음을 이룬 사람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당황하고 놀라며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택하여 행하지요.
사도 바울은 큰 권능을 행하며 복음을 전했지만, 핍박과 고난도 무수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핍박받을 때도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거나 힘을 잃지 않았지요. 많은 사람 앞에서 매를 맞고 수치를 당해도, 굶주리고 잠을 자지 못할 때도 마음만은 늘 평안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핍박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이지요. 또한 천국의 소망이 가득했기에 현실의 어려움에 전혀 짓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권능을 행하여 귀신을 쫓아내고도 오히려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도 힘들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습니다. 잠잠히 상황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렸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찬미했습니다. 깊은 밤 어두운 감옥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의 찬양은 얼마나 아름다운 향이 되었을까요.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찬양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요.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와 그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만민의 해외 성회를 통해서도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원로 목사님께서 이루셨던 해외 성회를 되짚어 보면,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파키스탄 성회 때는 테러의 위협이 있다 해서 성회 직전에 갑자기 성회장이 봉쇄되는 일도 있었지요. 그러나 원로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이 성회를 이루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평안히 기다리셨지요. 이때 굳게 닫혔던 철문이 극적으로 열렸습니다. 온두라스 성회 때는 성회 시간이 다가오는데 큰비가 쏟아졌습니다. 이때도 강사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단으로 올라가셨고, 그러자 세찬 빗줄기가 안개처럼 흩어졌습니다.
더욱 극적인 것은 인도 성회였지요. 성회가 시작되어 강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바람과 함께 큰비가 쏟아졌습니다. 강사님은 퍼붓는 빗속에서도 끝까지 말씀을 선포하시고 두 팔을 들어 환자를 위해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꼭 이뤄주셔야 한다고 하나님 앞에 고집한 것이 아니셨습니다. 이제까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어떻게 영광을 받으실지, 사모하며 행할 바를 하셨지요. 물론, 요동함이 없고 평안하다 해서 긴장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드리는 비장한 각오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나 어떤 때라도 깊은 마음에는 요동함이 없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인도 성회 때도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성회 기간에는 비가 오지 않아야 좋습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심각한 가뭄으로 시달리던 중에 비가 쏟아지니 현지인들에게는 오히려 은혜였지요.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강사님께서 힘껏 설교하고 기도하는 것을 볼 때, 참석한 이들뿐 아니라 TV로 시청한 사람들도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다음 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모여 크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결과적으로는 쏟아지는 비로 인해 최대, 최다, 최고의 성회를 이룰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 믿는다면,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지요. 그리고 그 뜻 안에서 자신이 갈 길을 찾아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양순한 마음으로 그 상황에 자족하며 선을 좇아 행해 나가면, 항상 성령께서 길을 비춰주시지요. 이것은 곧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지혜가 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마땅히 행할 것 이상으로 행하는 것
부모님이 어린 아들에게 “엄마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동생도 잘 보고, 숙제도 다 하거라.” 당부하고 외출합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숙제를 다 한 것은 물론이고 동생도 씻어주고, 서툰 솜씨지만 집 안 정리까지 해 놓았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자기 할 일 이상을 한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런 아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어린아이라 해도 믿음직스럽고 신뢰가 가지요. 이처럼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밝은 조명 속에서 범사에 더 좋은 것을 분별하여, 한 단계 더 깊은 선의 차원을 행합니다. 하나를 명하셔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둘, 셋, 혹은 그 이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녀들을 볼 때 매우 기뻐하시며 “내 마음에 합하다.” 하시지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선택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있다면 당연히 진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다 진리 안에서 가하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양순의 마음이 이뤄지면 나의 유익보다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는 것을 택하지요. 어느 것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남유다 왕국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이방인들의 침략을 받게 되었을 때, 다니엘과 친구들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의 처지였지만 왕궁에 살았고 왕이 주는 진미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식 중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가증한 것들이 포함될 수도 있었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환관장에게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을 것이니 물과 채식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환관장이 이를 허락했다가 소년들의 외모가 좋지 않게 되면 자신이 왕에게 책망받을 것을 염려하자, 다니엘과 친구들은 그에게 열흘 동안 시험을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채식만 한 다니엘과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윤택하고 아름답게 보인 것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포로의 처지였기에 음식의 좋고 나쁨을 따질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고 가증한 음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지요. 굳이 음식을 가려 먹겠다고 했다가, 환관장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왕의 노여움까지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함께 잡혀 온 다른 포로들처럼 그냥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과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먹지 않기 위해 좋은 음식을 마다하고 채식만 한 것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 앞에 더 합한 쪽을 택하려는 그들의 중심을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고기와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그들의 용모가 더 아름답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한 대로, 다니엘과 친구들은 지식과 명철, 영감으로 인해 큰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포로의 처지였지만 이방 나라 왕의 인정을 받아 높은 지위까지 이를 수 있었지요.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더 합한 쪽을 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장 현실적으로는 축복이 아니라 시련이 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요. 그럴 때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진리 안에 살아서 영적인 담대함이 있을 때라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 하나님은 내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굳건한 신뢰가 있어야 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깨우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믿음으로 환관장에게 부탁할 수 있기까지는 그들의 행실이 평소에 어떠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환관장 입장에서 보면 위험 부담을 안고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배려해 준 것은 다니엘과 친구들이 평소에 얼마나 선하고 성실하며, 사랑스럽게 행동했을지도 깨우쳐야 하지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공의에 합당한 행함을 쌓았던 것입니다. 평소에는 자기 좋을 대로 행하다가, 필요할 때만 내 믿음대로 하겠다면서 “양해해 달라” 요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 욕심에서 나오는 모습일 뿐입니다.
관용과 양순이 마음에 임한 사람에게는 사심이 없다 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유익을 좇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주장하지 않을 수 있고, 더 큰 마음이 되어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더 선한 것을 택하여 기쁨과 감동을 드릴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앞에서도 흠 없이 행할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사단의 송사 없이 역사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오직 하나님 중심, 진리 중심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08-13 오후 4:23:52 Posted
2026-08-21 오전 10:25:06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