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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교회

제목
우리의 열심은 남선교회 헌신예배 [딤후 4:7]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3.04.07
남선교회는 교회적으로 기둥같은 역할을 하며 육적으로는 한 가정의 머리로서 가족의 신앙을 책임져야 합니다. 영적으로는 기름 부음 받은 장로님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족도 많고 곳곳에서 사명을 맡아 충성하는 성도님도 많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고 뜨겁게 충성한다 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심이었는지 헌신예배를 통해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합당한 열심을 내보여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의 열심은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내는 열심이라야 합니다

그동안 “영적 장수 남선교회가 되겠습니다. 아버지께 주께 영광만 돌리겠습니다. 교회와 목자의 힘이 되겠습니다.” 수없이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의 열매는 어떠하십니까? 스스로 기대한 만큼 영적인 수준에 이르고 축복의 열매도 맺고 계신지요?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기대한 것보다 영적인 수준에 미달했고 여전히 연단 중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는 모든 믿음의 씨앗이 신속히 온전한 축복으로 맺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열심을 내듯이 영적으로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일을 찾아 열심히 행합니다. 예배와 기도 시간에 부지런히 참석하고, 사명을 사모하며 곳곳에서 충성하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열심을 내기는 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타고난 성격 자체가 적극적이고 성실하며 책임감이 강해서 교회 생활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분들이 있지요. 혹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믿음 있다고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 내는 경우도 있구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분별하지 못한 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하고 스스로 속는 경우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 내는 사람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마음과 뜻을 구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내가 보기에 좋은 목표를 좇아서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표와 방법을 구하며 그 마음과 뜻에 맞춰 순종하려 하지요.

쉬운 예를 들어 요즘은 어느 때보다도 여러분의 가장 큰 관심이 믿음의 분량을 성장시키는 데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믿음을 간절히 사모한다 해도 왜 간절한지 잘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의 모습을 이뤄드리기 위해 간절해야 하지요.

그런데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믿음의 분량을 사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왜 저보다 못한가’ 하는 마음으로 애를 태우거나 ‘내 직분과 위치에서 이만큼은 되어야 민망하지 않은데, 믿음이 있다고 인정받아야 사명 감당할 때도 떳떳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 때문에 간절한 것이지요. 이처럼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이 앞설 때는 열심히 말씀 무장하고 기도하다가도 막상 자신이 원하는 만큼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지쳐 버리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알았을 때 어찌하면 하나님 앞에서 더 온전해질까 자신의 모습을 먼저 궁구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과 비교하는 데 급급합니다. 내가 남보다 나으면 안심되고 남보다 못하면 마음이 상하지요. 물론 믿음 안에서도 선의의 경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을 하되, 초점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뜻을 이뤄드리고자 성결을 사모하는지 아니면 사람 앞에 인정받기 원하거나 자기 목표를 이루기에 더 급급한지 점검해 보라는 말씀이지요.

여러분이 사명을 맡아 충성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섬기는 마음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명 감당한다면 충성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것입니다.

또 남의 눈에 드러나는 일만 아니라 험하고 궂은일이라도 자원하여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당할 것입니다. 내가 좀 불편하고 번거롭다 해도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해 줄 방법을 궁구하며 낮은 자세로 섬기게 되지요. 때로는 나는 선한 의도로 행한 일에 대해 애매한 말을 듣고 억울한 일을 겪는다 해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니까’ 하고 묵묵히 감당할 수 있지요.

이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열심으로 더 뜨겁게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우리의 열심은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내는 열심에는 변개함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개하는 마음이 있기에 한때는 은혜가 충만해서 뜨겁게 달려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잘 보이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유익에 맞지 않으면 열심이 식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물질이나 명예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점차 신앙생활에 소홀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했다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응답이 되지 않으면 열심 내던 모습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관장이나 선교회장 등의 직분을 사모해서 열심히 모임에도 참석하고 물질과 봉사로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원하는 직분을 얻지 못하면 이후 모임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경우가 있지요. 자신이 주관해서 행사를 진행할 때는 의욕적으로 하다가 다른 사람이 주관할 때는 협조하지 않고 물러나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아무리 열심을 내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열심이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한 열정이 평생 변함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앉은뱅이를 걷고 뛰게 하는 등 큰 권능을 행했는데도 눈에 보이는 영광이나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바울을 돌로 쳤고,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친 일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찾아가서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외쳤지만 열매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요.

어떤 지역에서는 귀신을 쫓아내 주었는데도 오히려 그로 인해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적도 있었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은 복음 전파를 못하도록 바울이 가는 지역마다 따라다니며 죽이려 했고, 핍박했습니다. 애써 개척해 놓은 교회 안에 음행과 각종 죄악이 번지거나 성도 간에 분쟁의 소식이 들려서 바울이 깊이 근심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바울을 배신하여 떠나는 일꾼들도 있고 배척하는 일도 있었지요. 가난한 성도와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았는데 바울이 사사로이 쓸 것을 구한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떤 고난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치지도 낙심하지도 않았고,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왜 도와주지 않는가’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이제 그만하고 싶다’ 하지도 않았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것처럼 몸이 상하고도 정신이 들면 곧장 다음 지역으로 선교를 떠났지요.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혀서도 깊은 밤 죄수들이 다 들을 정도로 우렁차게 찬미를 올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몸이 되어 직접 선교하러 다닐 수 없을 때도 교회마다 편지를 보내어 일꾼들과 성도들의 믿음을 격려했지요.

주를 향한 여러분의 열심도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결코 변개함이 없는 진실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열심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내는 열심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드리는 열심은 진실하여 변개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변개함이 없기 위해서도 여러분이 받은바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뜨겁게 사명을 감당한 것도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신을 구원하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열심 낼 때는 무엇을 잘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칭찬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무리 희생하고 헌신하며 수고했다 해도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한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이 드린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처럼 드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고백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한 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만 돌리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질병 속에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부모와 형제들에게는 짐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조차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제 처지를 보고 통곡하면서 차라리 죽는 것이 효도라고 하셨지요. 앞날에 대한 꿈도 소망도 사라지고 모진 목숨만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만난 분이 하나님이셨지요.

하나님은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단번에 고쳐 주셨고 더구나 천국을 주셨습니다. 가정의 행복과 물질의 축복을 주셨고 삶의 소망을 회복시켜 주셨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후로 저는 그 은혜에 너무나 감사해서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주의 종의 길을 가게 되었고 시간과 물질, 아내와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 다 드렸지요.

4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최근 몇 년의 일들을 겪으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기가 거의 없어서 비틀거릴 때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을 때도, 호흡조차 쉽지 않을 때도 감사만 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반석으로,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너무나 감사했지요.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나름대로 다양한 인생의 사연들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자신의 중한 질병을 치료받았거나, 각종 어려움을 권능으로 해결받은 분도 많고 사랑하는 자녀, 아내, 부모님의 문제를 해결받은 경우도 많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여러분이 받은 큰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이지요. 이러한 은혜 하나하나를 더욱 깊이 새기며 날마다 더욱 뜨겁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쓴 여러 서신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만난 후 주님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순교를 앞두고 제자 디모데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자신은 평생을 후회 없이 하나님 앞에 살았고, 이제 자신에게 주어질 것은 영원한 새 예루살렘, 의의 면류관이라’ 담대하게 고백했지요(딤후 4:6~8).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러분과 모든 성도님들도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에 감사하여 변개함이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날, 새 예루살렘의 영광 중에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04-09 오전 9:23:37 Posted
2013-05-24 오전 1:02:3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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