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부활 주일

제목
부활 부활주일 [마 28:5-10]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4.04.20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누리며, 천국의 소망은 물론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오늘은 부활의 중요성과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축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도를 완성하신 주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과 행하시는 놀라운 권능을 보고 믿었습니다. 수천 년간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요, 강하고 위대한 왕국을 세워 자신들로 하여금 큰 영광을 얻게 해 줄 왕이라고 생각했지요. 더구나 장사한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까지 나던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이런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누릴 영광에 대한 기대로 더욱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대와는 다르게 갑자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처럼 잡혀서 끌려가셨고,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자들이 실감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님은 사형을 당하시고 말았지요. 더구나 저주받은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주님이 당하신 참혹한 고난도 충격적이었고 ‘이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이렇게 끝나버렸는가, 그동안 보았고 들었고 믿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 행복한 세월은 다 헛된 것이었나.’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역전시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소망을 무너뜨린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도를 완성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 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명과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의 길이 열린 것이지요.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쁨과 소망이 넘쳤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얻었으며 기꺼이 순교에 이를 수가 있었지요. 이 시간 주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깨닫고 온전히 받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담긴 부활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원래 개척 당시 본 교회가 속해 있던 성결 교단의 표제는 사중복음이었습니다. 곧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었지요.
그런데 개척한 지 2년도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장차 때가 되면 본 교회가 새롭게 교단을 창립하여 세계를 이뤄 갈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때가 되면 사중복음에 ‘부활’을 더해 오중복음을 외쳐야 한다 하셨지요.
저는 당시 그 말씀을 듣고 사실은 막막했습니다. ‘우리가 안양 예성교단에 속해 있으니 어떻게 교단의 표제에 부활을 넣어서 오중복음을 만들며, 어떻게 교단을 창설할까.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이루어질 텐데 어떻게 이룰지’를 생각하였지요. 그런데 때가 되니 오중복음의 교단이 창설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중복음의 핵심이 부활이라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3년간의 모든 권능과 가르침을 확증하는 것이 바로 부활이라”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보는 것이 곧 천국을 보는 것이라” 하셨고, “부활은 모든 인류의 소망이며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라고도 하셨지요.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도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그만큼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신앙에 있어 중요한 사건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주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우리 제단도 하나님 말씀대로 교회적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부활로 나오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 역시 나약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나 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지요.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본 제단이 모든 교회적인 시험을 통과해 멋있게 부활로 나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시고 오늘날까지 세계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3.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임한 축복

첫째, 구원의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려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해야만 합니다. 그 조건은 여러분도 잘 아시지요? 구세주가 되려면 첫째, 사람이어야 합니다. 둘째,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셋째,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즉 죄가 전혀 없어야 하지요. 넷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네 가지 자격 조건에 합당하기에 구세주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중 세 번째 조건인 영적인 힘을 가지려면 원죄도 자범죄도 없어야 하지요.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실 수 있었고, 죄인들을 사망으로부터 구원해낼 영적인 권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영혼들을 구원할 영적인 힘이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지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도’가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지요. 이 한 가지 축복만 해도 얼마나 큰 것인지 여러분은 마음 깊이 느끼며 살아가시는지요?
만약 여러분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라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질뿐 아니라 명예와 건강, 지식 등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누립니다. 그런데 하룻밤만 지나면 사형 당해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즐기자.”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가 없겠지요.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게 여겨질 것입니다. 만약 내일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누군가 그 형벌을 대신 받아 주고 여러분을 살려 주었다면 여러분은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실제로 세세토록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망의 형벌이 아닌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 사망의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에게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귀한 축복을 받은 여러분은 이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로마서 6장 10~11절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곧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려면 예수님께서 죄에 대해 죽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 어떻게 혈기내고 간음하고 도적질하겠습니까? 죄에 대해 죽은 사람은 죄악을 행할 수가 없지요.
이제 주님의 부활로 구원의 축복을 받았으니 죄에 대해서는 죽어지고, 오직 하나님께 대하여 진리 안에서만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 받는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제자들과 많은 무리가 늘 붙좇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말씀을 듣고 권능을 체험하도록 최선을 다해 사역하셨지만 모든 영혼들과 늘 함께해 주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주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도들이 언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기 전에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창세기 6장 3절 전반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신 대로 하나님은 죄인들과 함께하실 수가 없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을 보기만 해도 죽는다 했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어찌 죄인들의 마음 안에 임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을 통해 구속의 섭리를 완성하신 후에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마다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각 사람의 마음에 내주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주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했지요. 이렇게 함께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는 주님을 구세주로 확실히 믿을 수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인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달을 수 있고 생명과 축복의 길로 행할 능력을 받지요. 또 성령의 음성과 인도와 주관을 따라만 가면 항상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으시고 마치 엄마 손에 이끌려가는 아이처럼 안전하고 평안한 길로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결국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 이를 수 있지요. 이처럼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셨기에 누구든지 믿음으로 성령을 받을 수 있는 큰 축복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런 은혜를 주심에 감사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항상 순종하여 따라가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04-21 오후 11:13:47 Posted
2018-05-09 오전 11:20:52 Updated

다음 글 부활의 의미 이전글
이전 글 부활(2)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