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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 주일/고난 주간

제목
주님의 사랑 종려주일 [마 16:1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6.03.20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닷새 전,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소리 높여 ‘호산나’를 외치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며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참혹한 십자가를 지기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요?


1. 주님의 사랑은 ‘주고 주고 또 주시는 사랑’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를 사랑하여 준다고는 하지만 자기 한계 안에서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인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녀의 사랑 등 많은 사랑이 있지만 마지막까지 주기만 하는 사랑을 찾아보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간혹 상대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주는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는 둘 다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 경우입니다.
만약 한편에서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모르고, 오히려 상대가 제일 싫어하는 일만 하는 데도 그러한 사람을 위해 생명까지 주는 사랑을 하는 사람을 과연 찾아볼 수 있을까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상대를 위해 다 내어주고, 생명까지 내어주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먼저 주님을 사랑했거나 또는 우리가 먼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주님께 드렸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과는 원수 된 길로 가고 있을 때, 심지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바로 그러한 죄인들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33년 동안 단 한시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공생애를 준비하시는 시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직 영적인 준비에 전력하셨지요. 공생애 시간 동안에 때로는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조차도 없이 사역하셨습니다. 밤낮으로 영혼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며, 그리고 남은 시간은 또 제자들에게 내어주셨지요. 그러면서도 시간을 내어 습관을 좇아 늘 아버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든 영혼들을 위해 이처럼 모든 삶을 내어주셨지요.
저는 주의 종의 길을 가면서 이런 주님의 모습을 좇고자 했습니다. 가족과의 달콤한 시간도, 나 자신을 위한 충전과 쉼의 시간도, 또한 내가 보고 싶고 먹고 싶고 내가 해 보고 싶은 것도 다 뒤로 한 채 오직 하나님 앞에 저를 드렸고 영혼들에게 저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사역의 규모가 커지면서부터는 사랑하는 영혼들과 함께하는 시간마저도 포기한 채 영의 세계를 더 깊이 뚫어 들어가며 더 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는 데에 저의 모든 것을 쏟았지요. 더욱이 이제는 저의 모든 기가 소진되기까지 영혼들을 위한 공의를 채워 가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도 모른 채 저는 점점 더 제 자신이 녹아지는 듯한 한계 상황들을 수없이 만나야 했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는 길이니 이 길이 힘들다, 벅차다 하지 않고 영광의 길이라 마음을 다지며 감사했지요. 그러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그 사랑을 마음으로 함께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행복일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참 자녀를 얻기 위함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그 사랑을 영원토록 함께 나눌 자녀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랑을 꼭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 그 사랑이 느껴질 때 여러분은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제가 공의를 채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그대로 보게 하심도 바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눈에 나타나는 증거로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저를 통해 보여 주시는 ‘주고 주고 또 주는 사랑’을 여러분이 느낄 때 수많은 분들이 변화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제가 공의를 쌓는 만큼 여러분에게 더 많은 변화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 분도 빠짐없이 모든 분들이 주고 주고 또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 사랑에 보답해 드리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2. 주님의 사랑은 ‘천국의 소망을 열매로 맺게 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전하신 복음은 천국 복음이었습니다. 장차 천국에 가서 처소를 예비한 후에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 하셨고, 제자들에게는 주의 나라에서 한 상에서 먹고 마실 것이라는 가슴 벅찬 소망까지 주셨지요. 그리고 이러한 소망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천국을 침노해 들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고 기사와 표적으로 말씀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실질적으로 천국의 열매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지요.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제자를 참으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제자에게 서울대학교를 목표하며 달려갈 수 있는 소망을 심어 주었지요. “너도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어. 서울대학교는 이렇게 좋은 대학이고 그곳에 가면 너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져. 그러니 꼭 서울대학교에 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제자에게 열심히 서울대에 대한 소망을 심어 주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로만 소망을 심어 주면 이 제자가 서울대에 갈 수 있을까요? 이렇게 소망을 심어 주는 말만 많이 한다고 해서 제자를 사랑하고 아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녕 이 선생님이 제자를 사랑한다면 소망을 심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제자가 서울대에 갈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가 정말 서울대에 합격하게 해 주어야 선생님이 제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열매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한 소망만 심어 주신 것이 아니라, 영혼들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행함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 세대이기에 하나님의 권능을 끊임없이 보여 주어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도록 역사해 주셨지요. 또 영의 세계를 쉽게 이해하고 눈에 본 듯이 느낄 수 있도록 갖가지 비유와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어떤 마음과 행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해 주셨고, 때로는 천국과 반대되는 길에 대해서는 엄하게 경계해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셨으며 친히 모든 것의 본이 되고 푯대가 되어 주셨지요. 마침내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시며,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요 16:7). 주님이 가시면서 보내 주신 보혜사 성령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참으로 큰 유익이 되게 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친히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았다 해도 그 구원을 끝까지 지키며 천국 문에 이르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국의 열매로 맺히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하시며 때로는 탄식도 하시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역사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을 이처럼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지옥에 대해서도, 천국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천국에 대해 참으로 깊은 것까지 세세히 알려 주셨지요. 이처럼 좋은 천국을 알고 있기에 그곳에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천국에 대한 비밀들을 많이 알려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천국 새 예루살렘 소망 가운데 힘차게 달려가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소망만 드린다고 여러분이 저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의 소망이 열매로 맺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눈물도 흘려 보고, 대신 회개도 수없이 했으며 말씀으로도 깨우쳐 주었고, 부탁도 해 보며 위로도 해 주어 봤고, 달래도 봤으며, 이것저것 주기도 해 보고, 마음에 품기도 해 보는 등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천국을 눈에 본 듯, 손에 만진 듯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려고도 했지요. 목자의 성을 3D영상으로 만들어 보여 드린 것도, 제 기도처를 천국의 낙원, 1천층으로 꾸며 여러분을 초대하는 것도 제 편에서는 최대한 천국을 여러분의 손에 쥐어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여러분이 새 예루살렘의 열매로, 더 나아가 목자의 성의 열매로 나오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말입니다.
종려주일을 맞아 주님의 사랑을 두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주고 주고 또 주시는 사랑’, 둘째는 ‘천국의 소망을 열매로 맺게 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보며 체험한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였습니다. 이때는 아직 성령 받기 전이라서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마음에 깨우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느끼고 체험하면서 깨달은 제자였지요.
그러했기에 베드로는 이런 사랑을 주실 수 있는 분, 바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우쳤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가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셨다 했지요. 당시 아직은 비록 성령 시대가 아니었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여 베드로를 깨우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엄청난 고백을 가장 먼저 할 수 있었지요(마 16:16).
그런데 지금은 성령 시대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보혜사 성령께서 내주하시지요. 여러분이 보고 듣고 느낀 사랑이 제자 베드로보다 못하다 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영의 말씀으로 하나님, 주님의 사랑과 마음을 여러분에게 깨우쳐 드렸는지요. 또한 목자를 통해 그 사랑과 마음을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고백을 하시겠습니까?
정녕 주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십니까? 그 고백이 진실이라면 여러분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이 진정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자 180도 달라졌지요. 베드로는 남은 삶을 오직 주를 위해 드림으로 예수님께 드렸던 자신의 고백이 진정 참임을 마침내 증명해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주간을 맞아 여러분은 주님의 참된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에 진정 보답해 드리는 온전한 열매로 나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의 열매가 되어 세세토록 아버지 하나님, 주님과 그리고 저와도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3-22 오전 2:13:09 Posted
2016-03-23 오후 7:18:5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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