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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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2
제17과예수님의 계보에 오른 이방 여인 룻
룻 1:16~17
읽을말씀 : 룻 1:16~17 | 외울말씀 : 마 1:1~6 l 참고 말씀:레 25:25
교육목표 : 자신을 희생하며 성실과 진실로 변함없이 도리를 다했던 룻의 선을 본받아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선한 마음에 하나님을 믿게 된 룻
모압에 살던 룻은 극심한 흉년을 피해 이주해 온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집안의 남자들이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모두 죽고 맙니다. 결국 집안에는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동서 오르바, 그리고 룻만 남았습니다.
과부 셋이서 의지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유다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베들레헴을 향해 가던 중, 나오미는 남편과 자식이 없는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친정으로 돌아가 평안히 살 것을 권했지요.
이때 동서 오르바는 울며 떠났지만, 룻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고백하며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았습니다.
만약 룻에게 자기 유익을 좇는 마음이 있었다면 인정상 한두 번 거절하다가 시어머니의 강권에 동서 오르바처럼 못 이기는 척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선한 마음을 지녔기에 시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룻의 고백에는 끝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굳은 의지와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신앙의 결단까지 담겨 있습니다. 원래 룻은 모압 여인이기에 결혼 전에는 이방 신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으로 시집온 뒤에는 시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에 하나님을 선택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지요.
2. 하나님께서 룻의 선을 인정하시는 이유
1) 자신을 희생하며 도리를 좇는 마음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는 우애하며 젊은이는 노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므로 굳이 선이라 할 수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룻의 행함을 선하다 인정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룻이 친정으로 돌아가면 일가친척이 있고, 재혼해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따라간다면 낯선 땅에서 당장 먹고 살 뚜렷한 방안도 없습니다. 더욱이 시어머니는 나이가 들었기에 룻이 생활의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남편도 자녀도 없이 타향에 홀로 남는 처지가 됩니다. 그러니 시어머니도 며느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살도록 강권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자신의 유익을 계산한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홀로된 시어머니를 섬기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도리를 좇는 선은 가정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 현재 근무하는 직장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게 물어오셨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편을 택하기 전에 먼저 상담을 요청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만일 자신이 어려울 때 그 직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었으며 회사에서 중책을 맡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이겠습니까?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도리이자 선입니다. 꼭 이직을 해야 한다면 그 직장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현실의 유익을 포기하면서 도리를 좇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신앙 안에서도 도리를 좇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인 성장이 빠릅니다. 이런 사람은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에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처음부터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이 하나님의 자녀 된 기본 도리임을 알고 실천해 나가지요. 이는 마음에 도리를 좇는 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유통업이나 요식업 등에 종사해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운 분들 중 기도하여 환경을 바꿔 가거나,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유익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도리를 좇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도리를 좇는 사람은 십일조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니 그 증거로 총수입 중 십 분의 일을 드리라는 하나님 말씀이 힘들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이처럼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도리를 좇는 사람은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물론, 신앙 안에서도 신속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체험을 주시고 이를 통해 믿음을 성장시켜 주십니다.
2) 성실과 진실로 변함없이 도리를 행하는 마음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억지로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 땅으로 온 후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어려움이 닥쳐도 처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섬겼던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유다 땅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룻은 당장 양식부터 구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다행히 보리 추수 때였기에 이삭을 주워 근근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된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어머니를 공궤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성실히 일했습니다.
종일 이삭을 줍고 집에 가면 시어머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아뢰었지요. 친딸보다 더한 성심으로,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사랑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시어머니도 룻을 친딸처럼 사랑했으며 이러한 룻의 행실은 베들레헴 성읍 사람들에게 알려져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처럼 변함없이 도리를 좇아 행한 룻은 결국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성읍의 유력자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시어머니의 근족으로서 기업 무를 자격이 있었지요(룻 2:20 \; 레 25:25). 룻은 보아스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다윗 왕의 할아버지 오벳입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면서도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중심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때 몇 번 하다가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선을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선한 사람도 드물지만 끝까지 도리를 다하는 사람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자녀 된 도리를 좇아 병든 부모님을 보살피다가도 시간이 흘러 차도가 없고 거액의 치료비까지 든다면 대부분 마음이 변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거친 말로 병든 부모에게 상처를 줍니다. 물론 자녀들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부모를 섬기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지만 부모 입장에서도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것이 참사랑이며 선입니다. 서로 이런 사랑이 있다면 사람의 도리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알고 진리의 말씀을 배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길에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영생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니 받은바 은혜를 갚는 것이 마땅한 사람의 도리이지요. 더군다나 우리 영혼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좇아 얼마나 자녀 된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평생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고백한 분들은 그 마음에 변함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교회에서 영적인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룻처럼 영육 간에 자신의 도리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하나님께서 룻의 행함을 선하다 인정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을 희생하며 도리를 좇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 )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2~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룻의 계보
엘리멜렉_ 나오미
말론_ 룻/기룐_오르바
룻_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
교육목표 : 자신을 희생하며 성실과 진실로 변함없이 도리를 다했던 룻의 선을 본받아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선한 마음에 하나님을 믿게 된 룻
모압에 살던 룻은 극심한 흉년을 피해 이주해 온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집안의 남자들이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모두 죽고 맙니다. 결국 집안에는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동서 오르바, 그리고 룻만 남았습니다.
과부 셋이서 의지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유다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베들레헴을 향해 가던 중, 나오미는 남편과 자식이 없는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친정으로 돌아가 평안히 살 것을 권했지요.
이때 동서 오르바는 울며 떠났지만, 룻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고백하며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았습니다.
만약 룻에게 자기 유익을 좇는 마음이 있었다면 인정상 한두 번 거절하다가 시어머니의 강권에 동서 오르바처럼 못 이기는 척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선한 마음을 지녔기에 시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룻의 고백에는 끝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굳은 의지와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신앙의 결단까지 담겨 있습니다. 원래 룻은 모압 여인이기에 결혼 전에는 이방 신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으로 시집온 뒤에는 시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에 하나님을 선택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지요.
2. 하나님께서 룻의 선을 인정하시는 이유
1) 자신을 희생하며 도리를 좇는 마음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는 우애하며 젊은이는 노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므로 굳이 선이라 할 수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룻의 행함을 선하다 인정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룻이 친정으로 돌아가면 일가친척이 있고, 재혼해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따라간다면 낯선 땅에서 당장 먹고 살 뚜렷한 방안도 없습니다. 더욱이 시어머니는 나이가 들었기에 룻이 생활의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남편도 자녀도 없이 타향에 홀로 남는 처지가 됩니다. 그러니 시어머니도 며느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살도록 강권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자신의 유익을 계산한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홀로된 시어머니를 섬기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도리를 좇는 선은 가정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 현재 근무하는 직장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게 물어오셨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편을 택하기 전에 먼저 상담을 요청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만일 자신이 어려울 때 그 직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었으며 회사에서 중책을 맡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이겠습니까?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도리이자 선입니다. 꼭 이직을 해야 한다면 그 직장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현실의 유익을 포기하면서 도리를 좇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신앙 안에서도 도리를 좇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인 성장이 빠릅니다. 이런 사람은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에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처음부터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이 하나님의 자녀 된 기본 도리임을 알고 실천해 나가지요. 이는 마음에 도리를 좇는 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유통업이나 요식업 등에 종사해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운 분들 중 기도하여 환경을 바꿔 가거나,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유익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도리를 좇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도리를 좇는 사람은 십일조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니 그 증거로 총수입 중 십 분의 일을 드리라는 하나님 말씀이 힘들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이처럼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도리를 좇는 사람은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물론, 신앙 안에서도 신속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체험을 주시고 이를 통해 믿음을 성장시켜 주십니다.
2) 성실과 진실로 변함없이 도리를 행하는 마음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억지로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 땅으로 온 후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어려움이 닥쳐도 처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섬겼던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유다 땅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룻은 당장 양식부터 구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다행히 보리 추수 때였기에 이삭을 주워 근근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된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어머니를 공궤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성실히 일했습니다.
종일 이삭을 줍고 집에 가면 시어머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아뢰었지요. 친딸보다 더한 성심으로,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사랑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시어머니도 룻을 친딸처럼 사랑했으며 이러한 룻의 행실은 베들레헴 성읍 사람들에게 알려져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처럼 변함없이 도리를 좇아 행한 룻은 결국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성읍의 유력자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시어머니의 근족으로서 기업 무를 자격이 있었지요(룻 2:20 \; 레 25:25). 룻은 보아스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다윗 왕의 할아버지 오벳입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면서도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중심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때 몇 번 하다가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선을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선한 사람도 드물지만 끝까지 도리를 다하는 사람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자녀 된 도리를 좇아 병든 부모님을 보살피다가도 시간이 흘러 차도가 없고 거액의 치료비까지 든다면 대부분 마음이 변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거친 말로 병든 부모에게 상처를 줍니다. 물론 자녀들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부모를 섬기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지만 부모 입장에서도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것이 참사랑이며 선입니다. 서로 이런 사랑이 있다면 사람의 도리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알고 진리의 말씀을 배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길에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영생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니 받은바 은혜를 갚는 것이 마땅한 사람의 도리이지요. 더군다나 우리 영혼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좇아 얼마나 자녀 된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평생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고백한 분들은 그 마음에 변함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교회에서 영적인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룻처럼 영육 간에 자신의 도리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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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하나님께서 룻의 행함을 선하다 인정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을 희생하며 도리를 좇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 )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2~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룻의 계보
엘리멜렉_ 나오미
말론_ 룻/기룐_오르바
룻_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
2016-04-15
제16과사망에 이르는 죄
마 12:31~32
읽을말씀 : 마 12:31~32 | 외울말씀 : 히 10:26 l 참고 말씀:히 6:4~6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결코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황폐한 마음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 해도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하여 어느 한계선을 넘어 버리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결코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그러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을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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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 회개할 수 없는 죄도 있다.
이런 죄를 ( )라고 한다.
2.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 ), 모독, 거역의 죄이다.
둘째, 주님을 다시 ( )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이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 )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4~2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의 차이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결코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황폐한 마음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 해도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하여 어느 한계선을 넘어 버리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결코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그러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을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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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 회개할 수 없는 죄도 있다.
이런 죄를 ( )라고 한다.
2.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 ), 모독, 거역의 죄이다.
둘째, 주님을 다시 ( )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이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 )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4~2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의 차이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2016-04-08
제15과적그리스도의 영
요일 4:1~3
읽을말씀 : 요일 4:1~3 | 외울말씀 : 요이 7 ㅣ 참고 말씀:딤전 4:1~2
교육목표 : 구원의 도를 변질시키는 적그리스도의 영에게 미혹되지 않고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잘 분별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지어내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기도 하고, 혹은 악한 영에 미혹되어 거짓 예언을 하기도 했지요. 거짓 선지자들을 사주했던 어둠의 영은 오늘날도 성도들을 미혹해 나갑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이 오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속한 영, 곧 성령의 가장 큰 사역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사역입니다. 반면에 어둠에 속한 영들은 구원의 도를 변질시켜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는 것에 가장 힘을 쓰지요. 그래서 이를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1. 적그리스도의 영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되어질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악한 영인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알려 주면서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주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자체만을 믿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 등을 시인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감추어 두셨다가 펼치신 십자가 구원의 섭리는, 육의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곧 하나님께 속한 영을 받은 사람은 예수께서 구세주 되심이 믿어집니다.
또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를 깨달아 알며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한이서 7절에 보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요한일서 2장 19절에 보면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성령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틈타서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
요한일서 4장 5~6절에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라는 뜻입니다.
2.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진리의 말을 듣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진리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이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십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 하면서 교회만 왔다 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며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보면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16절에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말씀했지요.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물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적으로 성경 말씀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하여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을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면 자칫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며 모독하는 일이 되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영들을 정확히 분별하되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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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1. 우리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 )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이다.
2. ( )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한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도 요한’
원래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하고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변화되어 ‘사랑의 사도’라 불렸다.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 현장에 늘 함께 있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도 끝까지 곁에 있었다. 베드로와 야고보 등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초대교회 지도자로 사역했다. 말년에는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섬기다가 서기 100년경 90살의 나이로 소천했다고 한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의 박해 당시에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지만 전혀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나와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 속에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이 외에도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하였다.
교육목표 : 구원의 도를 변질시키는 적그리스도의 영에게 미혹되지 않고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잘 분별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지어내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기도 하고, 혹은 악한 영에 미혹되어 거짓 예언을 하기도 했지요. 거짓 선지자들을 사주했던 어둠의 영은 오늘날도 성도들을 미혹해 나갑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이 오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속한 영, 곧 성령의 가장 큰 사역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사역입니다. 반면에 어둠에 속한 영들은 구원의 도를 변질시켜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는 것에 가장 힘을 쓰지요. 그래서 이를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1. 적그리스도의 영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되어질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악한 영인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알려 주면서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주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자체만을 믿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 등을 시인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감추어 두셨다가 펼치신 십자가 구원의 섭리는, 육의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곧 하나님께 속한 영을 받은 사람은 예수께서 구세주 되심이 믿어집니다.
또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를 깨달아 알며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한이서 7절에 보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요한일서 2장 19절에 보면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성령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틈타서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
요한일서 4장 5~6절에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라는 뜻입니다.
2.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진리의 말을 듣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진리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이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십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 하면서 교회만 왔다 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며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보면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16절에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말씀했지요.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물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적으로 성경 말씀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하여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을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면 자칫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며 모독하는 일이 되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영들을 정확히 분별하되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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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1. 우리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 )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이다.
2. ( )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한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도 요한’
원래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하고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변화되어 ‘사랑의 사도’라 불렸다.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 현장에 늘 함께 있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도 끝까지 곁에 있었다. 베드로와 야고보 등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초대교회 지도자로 사역했다. 말년에는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섬기다가 서기 100년경 90살의 나이로 소천했다고 한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의 박해 당시에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지만 전혀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나와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 속에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이 외에도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하였다.
2016-04-01
제14과이단의 특징
벧후 2:2~3
읽을말씀 : 벧후 2:2~3 | 외울말씀 : 딛 3:10 ㅣ 참고 말씀:요이 10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단의 특징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받지 않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통해 이단의 정의 및 특징을 바로 알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더 나아가 이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미혹당하는 일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1. 이단의 특징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노시스파(Gnosticism)라고도 합니다. 그노시스(Gnosis)는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영혼과 육체는 별개의 것이므로 육체로는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했지요.
당시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영지주의가 기독교 교리보다 합리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으니 훨씬 편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많은 사람이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도,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부인했습니다.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이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하여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갑니다.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사람일 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어떻게 사람이면서 동시에 신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세 분이면서 한 분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그럴듯한 이단 사상을 만들어 내지요.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되고 지옥이 없다 주장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천년왕국에 대한 그릇된 신앙 때문에 병역 등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므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다른 예로, 주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일명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통일교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교주 자신이 구세주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여러 사업체가 있으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런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성경 외의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는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곳곳에 교회를 세웠는데 2차 전도여행 시 고린도에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들이 모인 교회이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난 후에 여러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써서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진리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는 회개하였고 사도 바울을 더욱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이 거짓 교리를 퍼뜨리면서 바울의 사도직과 가르침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그중에 고린도후서 11장을 통해서는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 결코 미혹당하지 않도록 권면하며 책망하는 사도 바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1)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잘 안다 해도 함부로 그들과 변론해서는 안 됩니다
디도서 3장 10절에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계속 변론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자기들이 선택한 이론으로 세뇌를 받기 때문에 섣불리 그들과 논쟁을 벌이면 그들의 꾐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0)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의 경험에 의지하여 그들을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종교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던 중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일로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담대하게 고백함으로 배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3~25절에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했지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 고백입니다.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이단의 가면을 쓰고 다가왔던 원수 마귀 사단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며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벧전 5:8). 진리에 굳건히 서 있지 못하고 두 마음을 품는다거나 의심하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을 떠나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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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단의 특징은 ( )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세주이심을 부인한다.
또한 성부, 성자, 성령 ( )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주를 신성시한다.
2. 성경에 이단에 속한 자들을 어떻게 대처하라고 했나요?
“이단에 속한 사람을 ( )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디도서 3: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 ) 말고 ( )도 말라”(요한이서 10)
* 금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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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넘어 갑시다!
변질된 ‘니골라’
초대교회가 급속히 왕성해지자(행 6:7), 사도들이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만 몰두하기 위해 교회의 일을 치리할 만한 사람을 뽑아 집사로 세웠다(행 6:2~4).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선택하여 집사로 세우고 열두 사도를 대신하여 구제를 비롯한 교회의 일을 돌아보게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니골라이다.
처음에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을 들었던 니골라 집사가 나중에는 영지주의에 속한 이단 사상에 빠져들어 성도들을 미혹하고 죄를 짓게 만들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단의 특징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받지 않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통해 이단의 정의 및 특징을 바로 알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더 나아가 이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미혹당하는 일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1. 이단의 특징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노시스파(Gnosticism)라고도 합니다. 그노시스(Gnosis)는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영혼과 육체는 별개의 것이므로 육체로는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했지요.
당시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영지주의가 기독교 교리보다 합리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으니 훨씬 편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많은 사람이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도,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부인했습니다.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이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하여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갑니다.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사람일 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어떻게 사람이면서 동시에 신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세 분이면서 한 분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그럴듯한 이단 사상을 만들어 내지요.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되고 지옥이 없다 주장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천년왕국에 대한 그릇된 신앙 때문에 병역 등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므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다른 예로, 주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일명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통일교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교주 자신이 구세주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여러 사업체가 있으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런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성경 외의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는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곳곳에 교회를 세웠는데 2차 전도여행 시 고린도에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들이 모인 교회이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난 후에 여러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써서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진리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는 회개하였고 사도 바울을 더욱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이 거짓 교리를 퍼뜨리면서 바울의 사도직과 가르침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그중에 고린도후서 11장을 통해서는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 결코 미혹당하지 않도록 권면하며 책망하는 사도 바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1)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잘 안다 해도 함부로 그들과 변론해서는 안 됩니다
디도서 3장 10절에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계속 변론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자기들이 선택한 이론으로 세뇌를 받기 때문에 섣불리 그들과 논쟁을 벌이면 그들의 꾐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0)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의 경험에 의지하여 그들을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종교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던 중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일로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담대하게 고백함으로 배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3~25절에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했지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 고백입니다.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이단의 가면을 쓰고 다가왔던 원수 마귀 사단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며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벧전 5:8). 진리에 굳건히 서 있지 못하고 두 마음을 품는다거나 의심하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을 떠나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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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 ) 안에 알맞은 말을 채워 보세요.
1. 이단의 특징은 ( )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세주이심을 부인한다.
또한 성부, 성자, 성령 ( )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주를 신성시한다.
2. 성경에 이단에 속한 자들을 어떻게 대처하라고 했나요?
“이단에 속한 사람을 ( )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디도서 3: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 ) 말고 ( )도 말라”(요한이서 10)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변질된 ‘니골라’
초대교회가 급속히 왕성해지자(행 6:7), 사도들이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만 몰두하기 위해 교회의 일을 치리할 만한 사람을 뽑아 집사로 세웠다(행 6:2~4).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선택하여 집사로 세우고 열두 사도를 대신하여 구제를 비롯한 교회의 일을 돌아보게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니골라이다.
처음에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을 들었던 니골라 집사가 나중에는 영지주의에 속한 이단 사상에 빠져들어 성도들을 미혹하고 죄를 짓게 만들었다.
2016-03-25
제13과부활의 영적인 의미
요 14:6
읽을말씀 : 요 14:6 | 외울말씀 : 고전 15:20 l 참고 말씀:살전 4:16~17
교육목표 : 믿음의 핵심 요소인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시종 가난한 길을 가셨고, 마침내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며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흠도 티도 없으신 분이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었기에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에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무덤에 장사된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부활과 영생, 천국 소망이 가득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부활은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죄인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건져 주셨습니다. 즉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요. 하지만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압니다. 즉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당할 사망은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 곧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사망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참 생명을 주셨기에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 중에도 수명이 다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들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신 대로, 죽어 장사되었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곧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면서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2.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이 그 증거이지요. 예수님은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기 원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행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지요. 또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됨을 증명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주님은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사망에 전혀 매이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지요. 또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신 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고,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죄인들의 손에 내어주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비록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인생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 참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때가 이르매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그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셨지요.
이러한 참사랑은 약 2천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고 계신 참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죄에 대하여는 철저히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습니다.
3. 부활은 ‘참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애매히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하나님께 외면당하여 철저히 혼자가 되시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그 충성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혹여 고난과 핍박이 올 때에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바로 부활의 증인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새기심으로 부활의 기쁨이 샘솟아나며, 더 확고한 믿음과 소망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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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1. 부활에 담긴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한다.
셋째, ( )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일까요?
3.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죽었을 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했나요?
* 금주 과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참혹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묵상하며 한끼 이상 금식과 감사의 기도 드리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체’란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입게 되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을 말한다. 부활체로 변화된 성도들은 빛나는 세마포를 입고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7년 혼인 잔치를 한다. 부활하신 주님처럼 부활체를 입으면 어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숨도 쉬고 음식도 먹고 마실 수 있다.
교육목표 : 믿음의 핵심 요소인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시종 가난한 길을 가셨고, 마침내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며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흠도 티도 없으신 분이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었기에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에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무덤에 장사된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부활과 영생, 천국 소망이 가득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부활은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죄인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건져 주셨습니다. 즉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요. 하지만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압니다. 즉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당할 사망은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 곧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사망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참 생명을 주셨기에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 중에도 수명이 다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들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신 대로, 죽어 장사되었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곧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면서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2.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이 그 증거이지요. 예수님은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기 원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행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지요. 또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됨을 증명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주님은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사망에 전혀 매이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지요. 또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신 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고,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죄인들의 손에 내어주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비록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인생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 참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때가 이르매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그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셨지요.
이러한 참사랑은 약 2천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고 계신 참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죄에 대하여는 철저히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습니다.
3. 부활은 ‘참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애매히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하나님께 외면당하여 철저히 혼자가 되시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그 충성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혹여 고난과 핍박이 올 때에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바로 부활의 증인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새기심으로 부활의 기쁨이 샘솟아나며, 더 확고한 믿음과 소망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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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1. 부활에 담긴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한다.
셋째, ( )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일까요?
3.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죽었을 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했나요?
* 금주 과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참혹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묵상하며 한끼 이상 금식과 감사의 기도 드리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체’란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입게 되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을 말한다. 부활체로 변화된 성도들은 빛나는 세마포를 입고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7년 혼인 잔치를 한다. 부활하신 주님처럼 부활체를 입으면 어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숨도 쉬고 음식도 먹고 마실 수 있다.
2016-03-18
제12과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벧후 2:1
읽을말씀 : 벧후 2:1 | 외울말씀 : 벧후 2:1 ㅣ 참고 말씀:요일 2:22~23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여 미혹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4~5)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핏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요.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를 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 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 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핏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죄로 인하여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핏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지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박수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적인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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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1. 베드로후서 2:1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말씀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 )를 의미한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핏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으며,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 )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 )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74~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여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여 미혹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4~5)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핏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요.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를 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 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 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핏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죄로 인하여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핏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지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박수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적인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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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1. 베드로후서 2:1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말씀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 )를 의미한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핏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으며,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 )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 )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74~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여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2016-03-11
제11과일곱 영 ( 2 )
계 5:6
읽을말씀 : 계 5:6 | 외울말씀 : 요 14:21 l 참고 말씀:빌 4:6
교육목표 : 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 기준인 일곱 영이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계의 법칙에 맞춰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하루에도 감사의 조건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건 사고 많은 세상에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 염려 걱정할 것이 전혀 없지요. 또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 무수한 질병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만 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도 걸리지 않게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지요. 이 외에도 세어 보면 감사의 조건이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아무에게나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시지요.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 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했다고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진 것입니다.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 일에 충성하다가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입니다.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으니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주의 일에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일곱 영이 측정하는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처럼 사랑이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곱 영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들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함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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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1. 믿음 → ( ) → 기도 → ( ) → 계명 지킴 → ( ) → 사랑
2.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 )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한다.
3. 일곱 영은 성도들이 ( )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신다.
4. 일곱 영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 )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신다.
* 금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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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넘어 갑시다!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_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_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교육목표 : 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 기준인 일곱 영이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계의 법칙에 맞춰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하루에도 감사의 조건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건 사고 많은 세상에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 염려 걱정할 것이 전혀 없지요. 또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 무수한 질병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만 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도 걸리지 않게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지요. 이 외에도 세어 보면 감사의 조건이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아무에게나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시지요.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 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했다고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진 것입니다.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 일에 충성하다가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입니다.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으니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주의 일에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일곱 영이 측정하는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처럼 사랑이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곱 영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들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함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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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 → ( ) → 기도 → ( ) → 계명 지킴 → ( ) → 사랑
2.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 )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한다.
3. 일곱 영은 성도들이 ( )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신다.
4. 일곱 영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 )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신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63~17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_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_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2016-03-04
제10과일곱 영 ( 1 )
계 5:6
읽을말씀 : 계 5:6 | 외울말씀 : 요 4:2 l 참고 말씀:약 4: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일곱 영에 대해 바로 알고 구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응답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일곱 영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들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시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고기나 야채를 살 때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응답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약 2:22).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의 분량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이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지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고백하지만,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은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룹니다.
셋째로,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2장 42절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 기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했는데,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을 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이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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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두 번째 측정하는 ( )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이다.
3. 일곱 영은 세 번째로 ( )를 측정한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등을 측정한다.
4.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6~1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여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일곱 영에 대해 바로 알고 구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응답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일곱 영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들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시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고기나 야채를 살 때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응답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약 2:22).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의 분량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이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지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고백하지만,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은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룹니다.
셋째로,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2장 42절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 기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했는데,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을 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이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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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두 번째 측정하는 ( )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이다.
3. 일곱 영은 세 번째로 ( )를 측정한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등을 측정한다.
4.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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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기본> 책자 156~1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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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여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
2016-02-26
제9과축복의 비결 (4)
말 3:8~10
읽을말씀 : 말 3:8~10 | 외울말씀 : 말 3:10 l 참고 말씀:마 6:21
교육목표 : 모든 물질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진정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십일조는 우리의 소득은 물론 모든 물질에 대한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십일조는 주일 성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 앞에 증거하는 행함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구원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1. 십일조의 중요성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모든 산업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수고하여 벌어들인 수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여 전체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므로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주시고 그중 십분의 일만 구별하여 드리라 하셨는데 그럼에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합니다.
많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중한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와 기도, 찬양, 충성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물질을 생명에 비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마 6:21).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축복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하면 축복을 받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충성, 봉사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적은 초신자의 경우는 구원받더라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일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축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힘들게 하려고 십일조라는 규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하여 ‘정말 그럴까?’ 의심하고 아까워하는 사람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축복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금으로 나온 교회의 재정은 영혼 구원과 직결된 일에 쓰입니다. 즉 주의 종이나 교회 직원들의 급여, 선교비, 각종 행사비, 성전 유지비, 구제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려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면 우선 총수입에서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달 급여가 100만 원인데,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 등이 공제되어 실제로는 80만 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 80만 원을 수입으로 잡아 8만 원을 십일조로 드렸다면 이는 바르게 계산한 것이 아닙니다. 총급여액인 100만 원을 수입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총수입이란, 현금 수입뿐 아니라 각종 현물 수입도 포함합니다. 식사 대접이나 선물도 수입에 포함하여 이에 대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요.
또한 감사 예물 등 다른 예물과 구별하여 별도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로 드려야 할 것을 다른 명목으로 헌금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임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수입에서 가장 먼저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십일조를 먼저 떼고, 나머지를 쓰는 것이 정석입니다. 수입이 생기는 즉시 십일조를 떼어 놓으면, 돈이 없어서 못 드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단순히 출석하는 교회가 아니라,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곳에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감사헌금이나 건축헌금 등 기타 헌금은 주관받는 곳에 드릴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각자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남편의 수입이라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의 수입이라면 아내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개인별로 땅과 집과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업터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공동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려도 가합니다. 자녀들도 세뱃돈이나 용돈, 생일 선물 등 수입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학비나 학용품 등과 같이 정해진 용도로 받는 것은 자녀의 수입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십일조는 떼지 않아도 됩니다.
십일조는 적어도 한 달 간격으로 계수해야 잊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수입이 생기는 그때그때 드리거나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리는 것이 좋지요. 농사를 짓는 경우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에는 몇 달 간격으로, 또는 일 년 단위로 드려도 괜찮습니다.
정규 수입이 없는 전업주부의 경우는 어떨까요?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를 즐기는 등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지출이 바로 자신의 수입이 되므로 이를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헌물을 드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헌물이란, 십일조 외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더불어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참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형편이 어려워서 드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적은 것이라도 사랑과 정성을 담아 드리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에도 상한 것, 흠 있는 것을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반드시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흠이 없는 예물이란,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드리는 ‘예물’에 흠이 없어야 함을 뜻합니다. 만일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는 채로, 또는 형제와 불목하면서 드리는 예물 또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나 허물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담을 헐고 나서, 이웃 간에도 화평을 이룬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또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예물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돈, 오물이 묻은 경우는 깨끗한 돈으로 바꾸어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쓰고 남은 것 중에서 대충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준비하였다가 드려야 하지요.
우리가 헌물을 드림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변개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헌금으로 드릴 것은 감사로, 건축헌금으로 드릴 것은 건축헌금으로 정확하게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헌금을 작정했다가 임의로 구제나 찬조로 바꾸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건축헌금은 여전히 드리지 않은 것이 됩니다.
또한 헌물은 반드시 단에 올려 안수를 받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드린 헌금에 주의 종이 기도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인쳐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드린 손길에 온전한 축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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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어 보세요.
① ( )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한다.
②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면 우선 ( )에서 십일조를 떼야 한다.
③ 십일조는 감사 예물 등 다른 예물과 ( )하여 별도로 드려야 한다.
④ 십일조는 수입에서 가장 ( ) 구별하여 드려야 한다.
⑤ 십일조는 ( )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한다.
⑥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각자의 ( )으로 드려야 한다.
⑦ 흠이 없는 예물이란, 드리는 사람의 ( )과 드리는 ( )에 흠이 없어야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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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도적’이라 표기된 명찰을 달고 있다. 그리고 의자에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 자신과 같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사람들에 의해 돌로 맞고 죽창과 같은 것에 찔리는 형벌을 받는다. 돌아가면서 서로 고문하고 고문당한다. 고문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지옥사자의 채찍에 맞기 때문이다. 백보좌 대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못으로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을 받는다.
교육목표 : 모든 물질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진정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십일조는 우리의 소득은 물론 모든 물질에 대한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십일조는 주일 성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 앞에 증거하는 행함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구원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1. 십일조의 중요성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모든 산업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수고하여 벌어들인 수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여 전체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므로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주시고 그중 십분의 일만 구별하여 드리라 하셨는데 그럼에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합니다.
많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중한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와 기도, 찬양, 충성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물질을 생명에 비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마 6:21).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축복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하면 축복을 받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충성, 봉사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적은 초신자의 경우는 구원받더라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일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축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힘들게 하려고 십일조라는 규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하여 ‘정말 그럴까?’ 의심하고 아까워하는 사람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축복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금으로 나온 교회의 재정은 영혼 구원과 직결된 일에 쓰입니다. 즉 주의 종이나 교회 직원들의 급여, 선교비, 각종 행사비, 성전 유지비, 구제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려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면 우선 총수입에서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달 급여가 100만 원인데,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 등이 공제되어 실제로는 80만 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 80만 원을 수입으로 잡아 8만 원을 십일조로 드렸다면 이는 바르게 계산한 것이 아닙니다. 총급여액인 100만 원을 수입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총수입이란, 현금 수입뿐 아니라 각종 현물 수입도 포함합니다. 식사 대접이나 선물도 수입에 포함하여 이에 대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요.
또한 감사 예물 등 다른 예물과 구별하여 별도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로 드려야 할 것을 다른 명목으로 헌금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임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수입에서 가장 먼저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십일조를 먼저 떼고, 나머지를 쓰는 것이 정석입니다. 수입이 생기는 즉시 십일조를 떼어 놓으면, 돈이 없어서 못 드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단순히 출석하는 교회가 아니라,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곳에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감사헌금이나 건축헌금 등 기타 헌금은 주관받는 곳에 드릴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각자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남편의 수입이라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의 수입이라면 아내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개인별로 땅과 집과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업터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공동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려도 가합니다. 자녀들도 세뱃돈이나 용돈, 생일 선물 등 수입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학비나 학용품 등과 같이 정해진 용도로 받는 것은 자녀의 수입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십일조는 떼지 않아도 됩니다.
십일조는 적어도 한 달 간격으로 계수해야 잊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수입이 생기는 그때그때 드리거나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리는 것이 좋지요. 농사를 짓는 경우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에는 몇 달 간격으로, 또는 일 년 단위로 드려도 괜찮습니다.
정규 수입이 없는 전업주부의 경우는 어떨까요?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를 즐기는 등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지출이 바로 자신의 수입이 되므로 이를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헌물을 드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헌물이란, 십일조 외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더불어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참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형편이 어려워서 드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적은 것이라도 사랑과 정성을 담아 드리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에도 상한 것, 흠 있는 것을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반드시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흠이 없는 예물이란,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드리는 ‘예물’에 흠이 없어야 함을 뜻합니다. 만일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는 채로, 또는 형제와 불목하면서 드리는 예물 또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나 허물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담을 헐고 나서, 이웃 간에도 화평을 이룬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또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예물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돈, 오물이 묻은 경우는 깨끗한 돈으로 바꾸어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쓰고 남은 것 중에서 대충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준비하였다가 드려야 하지요.
우리가 헌물을 드림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변개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헌금으로 드릴 것은 감사로, 건축헌금으로 드릴 것은 건축헌금으로 정확하게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헌금을 작정했다가 임의로 구제나 찬조로 바꾸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건축헌금은 여전히 드리지 않은 것이 됩니다.
또한 헌물은 반드시 단에 올려 안수를 받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드린 헌금에 주의 종이 기도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인쳐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드린 손길에 온전한 축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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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어 보세요.
① ( )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한다.
②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면 우선 ( )에서 십일조를 떼야 한다.
③ 십일조는 감사 예물 등 다른 예물과 ( )하여 별도로 드려야 한다.
④ 십일조는 수입에서 가장 ( ) 구별하여 드려야 한다.
⑤ 십일조는 ( )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한다.
⑥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각자의 ( )으로 드려야 한다.
⑦ 흠이 없는 예물이란, 드리는 사람의 ( )과 드리는 ( )에 흠이 없어야함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6~15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도적’이라 표기된 명찰을 달고 있다. 그리고 의자에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 자신과 같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사람들에 의해 돌로 맞고 죽창과 같은 것에 찔리는 형벌을 받는다. 돌아가면서 서로 고문하고 고문당한다. 고문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지옥사자의 채찍에 맞기 때문이다. 백보좌 대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못으로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을 받는다.
2016-02-19
제8과축복의 비결 (3)
출 20:8~10
읽을말씀 : 출 20:8~10 | 외울말씀 : 출 20:8 l 참고 말씀:사 58:13~14
교육목표 : 축복의 비결인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을 알아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영육 간에 강건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두 가지를 손꼽으라 하면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라면 주일,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지요.
이러한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영육 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녀라면, 어떤 재앙이나 시험 환난을 당하지 않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온전한 주일 성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의 유래
출애굽기 20장 8~10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 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칠일째 안식하신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일곱째 날을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날 하루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림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려야 하지요.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됩니다.
2.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이유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일곱째 날이었습니다. 달력을 보면 일요일이 첫째 날이고,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 일곱째 날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 와서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곧 안식 후 첫날, 일요일 새벽 미명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인 된 인류에게 소망을 주시고 참 안식과 기쁨을 주신 날이 바로 일요일이었지요.
이처럼 주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주신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주일 곧 주님의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고자 정하신 날이지요. 우리가 이러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죄인 된 인류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었습니다.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고달픈 삶을 살며, 죄의 짐으로 인해 그 영혼이 눌려 있었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장사된 지 삼 일 만에 모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지요.
이 사실을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부활의 소망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마음에 참 안식을 얻으며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주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에는 세상일을 하지 않고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됩니다. 토요일에는 집 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는 등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입을 깨끗한 의복과 함께 하나님께 드릴 예물도 정성껏 준비해 놓습니다.
주일에는 TV 시청이나 오락을 취하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야 합니다. 또한 악을 행치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잘 지켜야지요. 만일 다투고 혈기 내며, 세상일로 염려 근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예배만 드리고 ‘주일을 지켰다’며 놀러 가거나 일하러 갑니다. 이는 주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녁예배까지 다 드렸다 해도, 그 후 시간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주일 하루를 온전히 드리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요 4:24). 졸음이나 잡념에 빠지지 않고 집중하여 설교 말씀을 듣고, 마음을 실어 기도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예배 전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고, 축도나 주기도문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성전은 거룩한 곳이므로 가정사나 사업, 쇼핑, 연예인, 세상적인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물질이 새 나가지 않게 해 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일터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심으로 수입이 넘쳐 나지요.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입이 줄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와 재앙을 만나 수입이 새 나가지요.
그런데 특수한 직업이나 상황에 따라 주일에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인이나 경찰, 의사와 같이 사람의 생명과 나라의 안전에 관련되고, 유통업과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출장이나 연수를 다녀와야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주일에 근무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 있다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 저녁 늦게라도 예배를 드린다거나 인터넷 또는 화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지요.
주일에 개인의 이득을 위해 영업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매매하는 일은 금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초신자에게 무조건 주일에 영업하면 안 되고 물품을 구매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면 힘들어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기쁨으로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질 때까지 지혜롭게 이끌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매매 행위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나 주일학교 교사들의 식사를 제공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성도의 편의를 위해 교회 내 서점이나 매점, 자판기를 비치하여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구제와 선교 등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지요. 하지만 안식일에 이런 매매조차 하지 않도록 전날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 생명, 건강, 자녀, 일터 등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니 참된 즐거움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와 질병, 시험 환난이 없도록 한 주 동안 지킴 받으며 복을 받습니다(사 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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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1. ( )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고자 정하신 날이다. 우리가 이러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 )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2.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3. 이사야 58장 13~14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48~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은 악한 영들 중 하나로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교육목표 : 축복의 비결인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을 알아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영육 간에 강건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두 가지를 손꼽으라 하면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라면 주일,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지요.
이러한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영육 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녀라면, 어떤 재앙이나 시험 환난을 당하지 않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온전한 주일 성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의 유래
출애굽기 20장 8~10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 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칠일째 안식하신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일곱째 날을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날 하루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림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려야 하지요.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됩니다.
2.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이유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일곱째 날이었습니다. 달력을 보면 일요일이 첫째 날이고,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 일곱째 날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 와서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곧 안식 후 첫날, 일요일 새벽 미명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인 된 인류에게 소망을 주시고 참 안식과 기쁨을 주신 날이 바로 일요일이었지요.
이처럼 주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주신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주일 곧 주님의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고자 정하신 날이지요. 우리가 이러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죄인 된 인류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었습니다.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고달픈 삶을 살며, 죄의 짐으로 인해 그 영혼이 눌려 있었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장사된 지 삼 일 만에 모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지요.
이 사실을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부활의 소망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마음에 참 안식을 얻으며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주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에는 세상일을 하지 않고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됩니다. 토요일에는 집 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는 등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입을 깨끗한 의복과 함께 하나님께 드릴 예물도 정성껏 준비해 놓습니다.
주일에는 TV 시청이나 오락을 취하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야 합니다. 또한 악을 행치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잘 지켜야지요. 만일 다투고 혈기 내며, 세상일로 염려 근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예배만 드리고 ‘주일을 지켰다’며 놀러 가거나 일하러 갑니다. 이는 주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녁예배까지 다 드렸다 해도, 그 후 시간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주일 하루를 온전히 드리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요 4:24). 졸음이나 잡념에 빠지지 않고 집중하여 설교 말씀을 듣고, 마음을 실어 기도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예배 전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고, 축도나 주기도문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성전은 거룩한 곳이므로 가정사나 사업, 쇼핑, 연예인, 세상적인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물질이 새 나가지 않게 해 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일터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심으로 수입이 넘쳐 나지요.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입이 줄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와 재앙을 만나 수입이 새 나가지요.
그런데 특수한 직업이나 상황에 따라 주일에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인이나 경찰, 의사와 같이 사람의 생명과 나라의 안전에 관련되고, 유통업과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출장이나 연수를 다녀와야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주일에 근무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 있다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 저녁 늦게라도 예배를 드린다거나 인터넷 또는 화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지요.
주일에 개인의 이득을 위해 영업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매매하는 일은 금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초신자에게 무조건 주일에 영업하면 안 되고 물품을 구매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면 힘들어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기쁨으로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질 때까지 지혜롭게 이끌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매매 행위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나 주일학교 교사들의 식사를 제공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성도의 편의를 위해 교회 내 서점이나 매점, 자판기를 비치하여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구제와 선교 등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지요. 하지만 안식일에 이런 매매조차 하지 않도록 전날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 생명, 건강, 자녀, 일터 등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니 참된 즐거움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와 질병, 시험 환난이 없도록 한 주 동안 지킴 받으며 복을 받습니다(사 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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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
1. ( )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고자 정하신 날이다. 우리가 이러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 )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2.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3. 이사야 58장 13~14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48~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은 악한 영들 중 하나로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